미국 뉴욕에서 열린 32회 만우절 행진에 참석한 이들이 1일 화장실에 앉아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형을 앞세우고 행진하고 있다. 32회라고는 하지만 이 행사는 실제로 올해 처음 열렸다. 뉴욕/AFP 연합뉴스
“선거 개입이 필요하십니까? 러시아 외무부가 기꺼이 도와드립니다.”
러시아 외무부가 1일 외국에 있는 공관들이 사용하는 것처럼 꾸민 전화자동응답 음성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음성 메시지는 러시아어와 영어로 “러시아의 외교관이 당신의 정적에게 전화 걸기를 원하면 1번을 누르고, 러시아 해커들의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2번을, 선거 개입을 원하면 3번을 누르라”고 안내했다. 러시아 외무부 관리는 <에이피>(AP) 통신에, 이 게시물이 ‘공식적 조크’라고 말했다. 만우절을 맞아, 러시아 외무부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미국 정보기관들의 주장을 풍자한 것이다.
올해 만우절 풍경은 트럼프 대통령과 ‘가짜 뉴스’가 지배했다. 그동안 만우절에 ‘공식적인 조크’로 독자들에 웃음을 줬던 매체들이 올해는 ‘진짜 가짜뉴스’에 대한 우려 때문에 ‘만우절 가짜뉴스’를 내보지 않기도 했다. 가짜뉴스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스웨덴 일간 <베스테르보텐스쿠리렌>의 잉바르 네슬룬드 편집국장은 “우리는 전통적으로 성공적인 만우절 조크를 해왔다. 하지만 가짜뉴스를 두고 언론의 신뢰성에 대한 논쟁과 토론이 벌어지고 있어 올해는 만우절 조크를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노르웨이의 공영 방송과 여러 신문들도 만우절 조크를 싣지 않겠다고 했다. 일간 <베르겐스 티데네>의 에디터인 외위울프 예르테네스는 “가짜뉴스가 퍼지고 있는데 만우절 조크를 싣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에서 열린 32번째 ‘만우절 행진’에서 참석자들은 화장실에 앉아 있는 실물 크기의 트럼프 대통령 인형을 앞세우고 트럼프 가면을 쓴 채 행진을 했다. 올해가 32회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이 행사는 한번도 열린 적이 없었는데, 올해는 진짜로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주디(55)는 “올해는 아주 특별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는 지나칠 수 없었다. 우리는 모든 기회를 활용해 백악관에 있는 바보한테 우리의 심정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를 조직한 조이 스캐그스는 <아에프페>(AFP) 통신에 “도널드 트럼프가 만장일치로 올해의 ‘바보들의 왕’으로 선출됐다”고 말했다.
여전히 만우절 조크를 내보낸 곳도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유빙을 타고 북극곰이 스코틀랜드까지 내려와 발견됐다고 했다.
황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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