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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사우디선 큰일...여 운동가 ‘남성 후견인 없이’ 출소

등록 2017-07-31 16:19수정 2017-07-31 19:27

형제 폭력 못이겨 아버지 허락 없이 독립하려다 구금
사우디, 입학·취직·이주·결혼·치료·출소 ‘남성 허락’ 필수
5월 살만 국왕 ‘제도 수정 명령’ 이후 진일보 조처
지난 4월 아버지 허락없이 독립해 수도 리야드로 이주하려다 체포돼 구금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인권운동가 마리암 오타이비의 석방을 촉구하는 포스터. 지지자인 빌리 틴데일 트위터 갈무리.
지난 4월 아버지 허락없이 독립해 수도 리야드로 이주하려다 체포돼 구금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인권운동가 마리암 오타이비의 석방을 촉구하는 포스터. 지지자인 빌리 틴데일 트위터 갈무리.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은 아버지, 남자 형제, 남편, 아들 같은 ‘남성 후견인’이 없으면 시민으로서 기본권리조차 누릴 수 없다. 남성 후견인의 허락이 없이는 학교에 다닐 수도, 취직을 할 수도, 결혼을 할 수도 없다. 스스로 거주지 이전을 결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여권 신청도 거부된다. 남성 후견인 없이는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형기를 다 마쳐도 감옥에서 못 나오는 부조리가 합법적으로 행해진다. 그런 사우디에서 한 여권 운동가가 ‘남성 후견인 없이’ 구치소에서 석방됐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31일 사우디의 남성 후견인 제도 폐지 활동가인 마리암 오타이비가 구금 104일 만에 석방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5월 살만 국왕이 ‘남성 후견인의 허가 없이도 여성이 교육과 의료 등 공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수정하라고 명령한 이후, 제도 폐지로 나아가기 위한 진일보한 조처라는 평가가 나온다.

오타이비는 소셜미디어에 후견인 제도 폐지를 촉구하며 해시태그를 다는 ‘#내가나의후견인이다’(#IAmMyOwnGuardian) 캠페인에 깊숙이 관여해왔다. 걸프인권센터(GCHR) 누리집을 보면, 오타이비는 지난 2월 캠페인 참여에 반대하는 남자 형제로부터 위협을 받은 뒤 경찰에 가정폭력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아버지는 불복종으로 맞고소해 딸을 여성 감옥에 처넣었다. 그는 감옥에서 나오기 위해 남자 형제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해야 했다. 이후 지난 4월 ‘독립적인 생활’을 하겠다며 아버지의 집이 있는 고향 라스를 떠나 혼자 수도 리야드로 떠났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영향력이 큰 그는 트위터에 “지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내 목숨을 잃을지라도…”라는 글을 올려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나흘 뒤인 4월19일 아버지의 신고로 다시 경찰에 체포됐다.

사우디는 2016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 양성평등 지수가 144개국 가운데 141위였다. 보수적인 중동국가들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남성 후견인 제도를 뒀다. 국제사회는 이 제도가 여성을 남성의 하위 주체로 깎아내리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해왔다.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를 다양화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국제적 시선에 민감해진 사우디 정부는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사우디 정부는 2009년과 2013년 후견인제 폐지를 검토했다. 하지만 폐지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오타이비를 비롯한 사우디 여성들은 후견인제 폐지 운동의 선봉에 서 있다. 여성들이 손에 쥔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강력한 캠페인 무기다. 지난해 7월 트위터에서 ‘사우디 여성의 노예화를 멈춰라’(#StopEnslavingSaudiWomen)는 해시태그와 함께 폐지 운동이 벌어져, 2개월 동안 약 1만5천명이 서명했다. 사우디의 대표적인 여권 운동가 아지자 유수프는 지난해 9월 왕실재판소에 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전달했다.

지난 5월 살만 국왕의 제도 개선 명령을 이끌어냈지만, ‘여성 독립’까지는 갈 길이 험난하다. 지난 4월10일 여권 운동가 디나 알리 라슬룸은 오스트레일리아로 망명하려다 경유지인 마닐라에서 붙잡혔다. 삼촌들은 라슬룸의 입을 테이브로 막고 팔다리를 테이프로 묶은 뒤 사우디행 비행기에 태웠다. 라슬룸은 쫓기는 과정에서 한 캐나다 관광객한테 스마트폰을 빌려 동영상을 촬영한 뒤 소셜미디어에 “가족들이 나를 죽일 거다, 도와달라”는 도움을 요청해 국제적인 논쟁을 촉발했다. 의대생인 알라 아나지는 이 영상을 본 뒤 리야드 공항에서 열린 라슬룸 지지 집회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7일간 구금되기도 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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