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고스 미국 해군분석센터(CNA) 적성국분석국장은 지난 26일(현지시각) 워싱턴 인근 버지나아주 알링턴의 한 음식점에서 <한겨레>와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재개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미국 비영리단체인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적성국분석국장은 북한의 지난 25일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 북-미 대화에서 불만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것”이라며 “힘의 비대칭 관계에서 북한과 미국 가운데 먼저 양보해야 하는 쪽은 강자인 미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절대로 일방적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미 중재자로서 힘을 실어주고, 북-미가 차근차근 상응조처를 주고받는 게 현실적 해법이라고 말했다. 북한 분석 전문가인 고스 국장을 지난 26일(현지시각)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해군분석센터 근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 북한 관영 매체는 이번 미사일 발사가 ‘한국에 대한 경고’라고 보도했다.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보나?
“미사일 발사는 한국이 F-35 스텔스 전투기를 도입하고 미국과 연합군사훈련을 하는 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미국과의 대화에서 만족스럽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것이다. 북-미는 약자와 강자의 비대칭 관계다. 약자는 언제나 불평할 수 있고, 진전을 원한다면 강자는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힘이 약한 자가 먼저 양보를 하면 갈수록 더 약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에서 주요한 양보는 언제나 힘센 쪽에서 나와야 한다.”
-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무엇을 원하는가?
“제재 완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 초)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원한다고 명확하게 밝혔다. 북한은 미국이 뭔가 테이블에 가져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미국은 그러지 않았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달 말 판문점 북-미 정상 만남 뒤) 인도적 지원이나 인적교류를 언급했지만, 북한은 미사일 발사로 응답했다. 인도적 지원이나 인적교류로는 충분치 않다는 의미다. 북한은 엘리트 계층의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는 것을 원한다.”
-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미 실무협상이 7월 중순께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지만, 8월 이후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미국의) 양보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폼페이오와 비건은 심부름꾼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서 양보가 결정돼야 한다.”
- 판문점 정상 회동 이후에도 비핵화에 관한 북-미 양쪽의 입장은 변화가 없어 보이는데
“북한은 ‘미국이 정책(계산법)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도 안 바꾼다’고 명확히 밝혀왔다. 북한은 하노이에서 ‘미국을 믿지 마라’는 교훈을 얻었다. 미국의 양보를 먼저 못박아 둔 뒤에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문제는 미국이 ‘관여’(인게이지먼트)라는 올바른 아이디어와 ‘최대한의 압박’이라는 완전히 잘못된 전략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이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말을 믿고 최대한의 압박에 매달리는 한, 아무 데도 나아갈 수가 없다.”
- 미국이 태도를 안 바꾸면 북한이 추가적으로 도발적 행동을 취할 것으로 보나
“미국이 북한이 관심 가질 것을 테이블에 올리지 않는 한 이런 행동이 계속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북한과 대결하던 2017년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에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작은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당장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으로서도 과거 미 대통령들과는 다른 트럼프 대통령이 있을 때가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매우 조심할 것이다.”
- 북-미 대화 성공을 위한 첫걸음은 무엇이어야 하나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미국의 대북 양보를 주도할 수 있게 권한을 줘야 한다. 실제로는 한국의 대북 양보인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가 그것이다. 그 대가로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다 다른 핵프로그램 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추가로 내놓을 수 있다. 이걸 시작점으로 북-미가 단계적이고 상응적인 조처들을 쌓아갈 수 있다.”
- 미국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검증된 비핵화(FFVD)’를 목표로 제시하면서 비핵화 최종 상태(엔드 스테이트)와 로드맵에 합의할 것을 북한에 요구하고 있는데
“할아버지나 아버지에 비해 정통성 기반이 약한 김정은에게는 정책적 성공이 매우 중요하고, 그것은 핵프로그램과 직결된다. 이는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빼앗기 전에 경제 발전부터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다. 북한은 절대로 일방적 비핵화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핵을 가진 북한’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고 시설들을 조금씩 해체해 나가도록 하고, 관여해서 우리 쪽으로 설득해내는 게 우리의 전략이어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최종 목표로 남겨두고, 북한이 관심 갖는 것들을 우선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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