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유일 석유시추선이었던 두성호의 작업 모습 한국석유공사 누리집 갈무리
현대의 최고 전략자원 석유의 운명이 역사적 변곡점에 들어섰다.
인류 역사상 최대 전쟁으로 석유 가치가 치솟았고, 인류 초유의 전쟁이 그 가치를 바닥으로 밀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는 세계대전으로 최고 전략자원으로 등극했으나, 코로나19와의 싸움으로 전략적 가치가 급감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유가의 기준인 서부텍사스중질유(WTI) 5월 인도분이 20일 거래에서 -37.63달러라는 석유 거래 사상 첫 마이너스 가격을 기록한 것은 조락하는 석유 운명을 상징한다. 물론 석유 저장 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에서 선물거래 5월 만기일(21일)이 겹쳐 벌어진 일시적인 상황이나, 수요가 급감하고 공급이 초과하는 최근의 석유 시장 상황을 그대로 드러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이동제한 및 경기침체로 인한 수요 급감이 근본 원인으로, 이런 추세가 달라질 요인은 단기적론 보이지 않는다.
영국 해군의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위키미디어 커먼스
석유가 현대에서 최고 전략자원으로 떠오른 결정적 계기는 영국이 1913년 주력 전함으로 제작한 ‘퀸 엘리자베스’ 호가 최초로 석유 동력 엔진을 장착하면서부터다. 퀸 엘리자베스는 기존의 석탄 동력 전함에 비해 월등한 기동력과 효율을 과시해, 영국 해군의 경쟁력을 배가했다. 퀸 엘리자베스가 가동될 때에 이미 미국에서는 텍사스 등지에서 유전이 개발됐다. 포드는 대중적 자동차인 포드-T를 출시해 1914년 50만대 이상을 판매했다. 군수와 민수 양 분야에서 석유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곧 영국의 해군장관이 되는 윈스턴 처칠은 미래의 전략자원이 석유임을 간파했다. 그는 한창 유전이 개발되기 시작하던 중동에 대한 영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열렬한 마지막 ‘대영 제국주의자’가 됐다. 2차 대전의 승패를 가른 스탈린그라드 전투도 나치 독일이 당시 소련의 유전지대인 카스피해로 진출해, 중동까지 나아가려는 전략 때문에 벌어졌다. 나치 독일은 무리하게 이 전선에 집중하다가 스탈린그라드에서 대패하며, 몰락의 길로 갔다.
2차 대전 전승국 지도자들은 얄타 회담으로 전후 세계 분할을 논의했다. 얄타 회담 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귀국길에 병환의 몸을 이끌고 신생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이븐 사우드를 만난 것은 석유 때문이었다. 이란의 민족주의 성향 모하마드 모사데크 정부가 석유 국유화를 단행하자 미국이 중앙정보국(CIA)을 동원해 전복시킨 것도 석유 때문이었다. 그 후 미국이 중동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한 것 역시 모두 석유가 첫번째 동인이었다.
석유가 배후 요인이던 중동분쟁 와중에서 발발한 1973년 오일쇼크는 석유의 전략적 가치를 최고로 고조하며, 지정학적 격변도 불렀다. 자본주의 경제는 10년 이상의 장기불황에 돌입해, 서방 선진국들은 지식경제와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환해 나갔다. 넘쳐나는 오일달러로 사우디 등 중동국가 내에서는 빈부격차와 성속갈등이 고조돼, 이슬람주의가 분출했다. 이란에서는 최초로 이슬람 혁명에 이은 이슬람공화국이 성립됐다. 이미 1960년대부터 중공업 경제가 정체됐던 소련은 석유값이 오르자 오히려 제3세계 분쟁에 더 개입하며 영향력을 확장하려 했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대표적 예다. 하지만 1980년대 중반 들어 석유값이 폭락하자, 소련은 과잉전개된 국력을 수습하지 못하고, 몰락의 길로 갔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 미국 오레곤주의 한 주유소에 붙었던 안내문. 녹색 깃발은 모든 차량, 노란 깃발은 사업용 차량 주유 가능을 뜻하며 붉은 깃발은 재고없음 또는 폐점을 뜻한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석유지정학의 절정이었다. 미국은 중동민주화라는 미명 하에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고 중동 전체에서 미국에 우호적인 질서를 만들려다가, 수렁에 빠졌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수하던 2008년에는 금융위기로, 석유값이 역사적인 저점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셰일 석유가 개발돼, 본격적으로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비용과 환경오염이 문제였지, 그 매장량은 미국의 한 셰일 유정에서만 100년 이상이나 쓸 수 있는 양으로 측정됐다. 비관적으로 보였던 전통적 유전이나 천연가스도 예상 이상으로 개발돼, 시장에 석유나 가스 등 화석연료 공급은 넘쳐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산업 동력과 친환경 개발 욕구에 바탕한 대체에너지 개발도 활발해졌다.
2010년 8월18일 이라크에 주둔했던 마지막 미군 전투여단인 제4스트라이커여단 소속의 장갑차들이 줄지어 이라크 국경을 넘어 쿠웨이트로 이동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금융위기 이후 하향 안정화를 보이던 석유값은 지난 3월초 코로나19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은 인류가 서로 떨어져야 하는 ‘이동제한’이어서, 석유 수요는 하루 3천만배럴이나 급감했다.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30%에 해당된다. 석유값이 배럴당 20달러를 맴돌자, 50달러 이상이어야 수지가 맞는 셰일 석유 기업이 파산위기에 몰리고, 전통적 석유 메이저들도 비틀거리고 있다.
핼리버튼의 위기가 석유의 위기를 대표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때 전쟁 용병들을 투입하고 이라크 석유 이권을 거의 독점했던 석유 장치 기업인 핼리버튼은 올해 1분기 10억달러의 적자를 봤다. 이라크 전쟁의 주역인 딕 체니 당시 미 부통령이 최고경영자였던 핼리버튼은 이라크 전쟁의 배후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석유지정학이 만든 기업이었다.
19일 대구시 북구 침산동의 한 주유소 알림판에 경유 가격이 ℓ당 970원으로 표시되고 있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전국평균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ℓ당 1천311.67원, 경유는 ℓ당 1천120.99원으로 집계됐다. 연합뉴스
이번 ‘마이너스 유가’ 사태는 원유저장 시설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물 투자자들이 일제히 5월물을 팔아치우고 6월물을 사들이면서 일시적으로 빚어졌다. 석유를 싸게 사서 쌓아둔 투자자들은 올 가을 이후 ‘대박’을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위기가 잦아들어도, 석유에 대한 욕구가 전처럼 회복될 전망은 어둡다. 공급이 넘쳐나는 데다, 코로나19가 제기한 환경위기와 새로운 삶의 양식이 그 수요를 반감하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코로나19와의 싸움이라는 인류에게는 초유의 전쟁이 석유의 가치를 극적으로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