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6일 오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모습. 평양/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한국을 때려서 미국을 으른다.’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남북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있는 것은 ‘결렬 상태에 빠진 미국과의 핵협상에서 전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외신과 관측통들이 지적했다.
특히 북한과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는 중국 쪽에서 이런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인민일보>와 <신화통신> 등 중국의 관영 언론들은 이번 사태에 사실 보도에 그치며, 논평을 삼가고 있다. 그러나 <관찰자망> 등은 17일 “한국의 특사 파견 제안을 북한이 거부했다”는 등의 내용까지 속보로 전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관찰자망>은 “재선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 속에 오는 11월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당선되면, 차기 미국 정부가 다시 ‘전략적 인내’ 정책으로 복귀할 수 있다”며 “북한으로선 대선 전 어떻게든 트럼프 행정부를 몰아세워야 하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인터넷 매체 <펑파이>는 “북이 남쪽과 대화를 원치 않으며, 한국에 대한 압박과 타격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 매체는 “북핵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이고, 북한의 의도는 한국을 때려 미국을 움직이려는 것”이라며 “남쪽(한국)이 남북관계가 위태롭다는 점을 깨닫고 대담하게 정책을 바꾼다면 북도 환영하겠지만, 기존 정책을 유지한다면 남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는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성과로 자랑해 온 미국 대북정책의 파산을 전세계에 선언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신문망>은 왕성 지린대 교수(국제정치)의 말을 따 “북한은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지만, 한국의 대북정책은 미국 요인으로 제약을 받고 국내 일부 보수세력까지 고려해야 하는 등 큰 걸음을 내딛기 어려웠다”며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는) 김여정 노동당 제1 부부장이 대남 업무에 전면적으로 나선 상황에서 자신의 지위를 다지기 위한 조치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양시위 중국국제문제연구원 선임연구원도 이 매체에 “북으로선 (긴장 고조를 통해) 미국의 정책에 따른 한국을 타격하는 한편 대북제재 해제를 가로막은 미국도 타격하는 등 일석이조라고 여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북한이 앞으로 대미 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킬 수 있는 핵 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피하면서 남북 간 긴장을 연출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려는 생각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은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때 북한이 영변 핵시설 완전 폐기를 제안하고 대가로 대북 경제제재 해제를 미국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신문은 익명의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이 제안(내용)은 문재인 대통령의 충고였지만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은 체면만 구긴 모양이 됐다”고 전해, 북한의 불만이 궁극적으로 미국을 향하고 있다고 시사했다.
미국 <뉴욕 타임스>는 “연락사무소 파괴는 북한과 트럼프 행정부 사이의 실패한 회담을 중재한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메시지”라면서도 “이는 또 워싱턴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신문은 “미국 대선이 다가오면서, 북한은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 같은 것으로 워싱턴을 협박하는 쪽으로 도발을 전환할 수도 있다”고 분석가들을 인용해 전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16일 북한의 최근 일련의 행동이 “긴장 고조를 위해 정밀하게 계산된 조처”라며 “2년간의 데탕트(긴장완화) 국면이 끝났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트럼프의 재선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 문제는 미국의 대선 캠페인에서 주요 이슈가 되어 미국을 성가시게 하는 북한의 능력을 재확인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베이징 도쿄/ 정인환 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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