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알렉스 에이자(가운데)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식품의약국(FDA)이 코로나19 혈장치료의 긴급사용을 승인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3일(현지시각) 코로나19 혈장치료의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날 오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늘 나는 중국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진정으로 역사적인 발표를 하게 되어 기쁘다”며 이를 공개했다. 트럼프는 “오늘의 조처는 이 치료에 접근성을 극적으로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의약국은 성명을 내어 지금까지 7만명 이상이 혈장치료제 치료를 받았으며, 이 중 2만명의 환자에 대한 분석에서 이 치료법이 안전한 접근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또 혈장치료의 효과는 80살 이하 환자와 인공호흡기에 의존하지 않는 이들에서 더 높았다고 식품의약국은 밝혔다. 이들 환자는 치료를 받고 한 달 뒤 생존률이 35% 더 높았다는 것이다. 혈장치료는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가 회복된 환자의 혈액 중 혈장에 포함된 항체를 투여하는 치료법으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에볼라 등에도 사용돼왔다.
트럼프는 이날 혈장치료 긴급사용 승인을 코로나19 대응에 “역사적인 돌파구”라고 추어올렸고, 알렉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도 기자회견에 동석해 “코로나19로부터 목숨을 구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 기념비적 성취”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이번 조처가 획기적 돌파구는 아니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버드대 국제보건연구소의 아시시 자 소장은 트위터에 “나는 혈장치료를 치료법으로 쓰는 것에 낙관적이었지만 낙관이 과학은 아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강화된 무작위 임상시험 결과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이 긴급사용 승인을 하는 것은 시험을 더 어렵게 하고 식품의약국의 신뢰도를 약화시킨다”고 말했다. 또한 혈장치료는 이미 코로나19 환자들에게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날 발표로 혈장치료의 접근성이 더 높아질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를 의식한 듯, 에이자 장관과 스티브 한 식품의약국장은 이날 회견에서 효과를 강조하기보다는 “유망한 치료법”이라고 표현했다. 한 국장은 앞서 성명에서 “혈장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계속 연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발표가 나온 시점이 트럼프를 11월3일 대선에 출마할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하는 공화당의 전당대회(24~27일) 하루 앞이어서, 정치적 의도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는 코로나19 대응 실패로 지지율에서 고전을 겪어왔으며, 하루 전인 22일에는 트위터에 “식품의약국의 딥스테이트든 누군가든 제약회사들이 백신과 치료제를 시험하기 위해 사람들(대상자)을 구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 분명히 그들은 11월3일(대선) 이후로 그 대답을 늦추기를 바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딥스테이트’는 트럼프가 정부 안에 자신을 무력화하려는 세력이 있다며 사용하는 단어다. 하루 만에 트럼프가 원하는 조처가 나온 것이다. 혈장치료 긴급사용 승인은 트럼프가 전대 기간에 코로나19 대응의 주요 성과로 내세우기 좋은 소재다.
트럼프가 코로나19 백신을 조기에 사용 승인하려는 듯한 움직임도 포착됐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지난달 30일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를 만나, 미국에서 3상 임상시험을 마치지 않은 백신의 긴급사용을 이르면 9월 말 승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2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만남에서 메도스 실장은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중인 백신이 가장 가능성 있는 후보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는 현재 영국,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2상과 3상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으며, 연구자들은 이르면 9월까지 결과가 나올 걸로 기대한다고 밝혀왔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트럼프 행정부가 대선 승리를 위해 미국 내에서의 임상실험 등 절차를 무시하고 백신 승인을 서두른다는 얘기가 된다. 또 백신 개발 시기를 올해 말이나 내년 초로 언급해온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장 등 전문가들의 예상과도 다르다.
이 보도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므누신 장관과 메도스 실장이 이르면 9월 말 백신을 승인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이 관리는 외국에서의 임상시험에만 바탕해 백신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