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중재보단 내부요구 큰 의미
정착촌·독립국창설등 ‘지뢰’ 여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정상들이 지난 4년간 3350여명의 팔레스타인인과 970여명의 이스라엘인의 목숨을 앗은 제2차 인티파다(반이스라엘 봉기)의 종식에 합의함으로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평화의 기운이 높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낙관은 이르다는 조심스런 전망이 많다. ◇ 다시 피어오른 평화 기운=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8일 이집트 샤름 알셰이흐에서 밝힌 합의 내용은 공동선언이 아닌, 서로의 입장을 밝힌 연설과 선언 형식이었지만 4년 넘게 지속된 폭력을 중지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다짐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바스 수반은 “새로 태어난 평화의 기회”라고 의미를 부여했고, 샤론 총리는 이례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독립적으로 존엄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하겠다”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들을 계속해서 지배하거나 팔레스타인의 운명을 통제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과거 회담처럼 외부의 적극적인 중재보다는 이-팔 내부의 평화 요구가 크게 작용했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런 변화는 △지난해 11월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의 사망 이후 지난 1월 비폭력과 협상을 지향하는 아바스가 수반에 당선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한테 휴전하도록 설득하고 나서고 △이스라엘 쪽에선 아라파트와 함께 자리하는 것조차 거부하던 강경파 샤론 총리가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계획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아바스의 존재를 인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가능했다. ◇ 낙관론과 비관론의 교차=이-팔 합의는 1979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 1993년 오슬로 협정과 10여차례의 과거 휴전 합의가 무산됐던 예에서 보이듯 그 이행과 궁극적인 평화 달성을 낙관하기 어렵다. 예루살렘의 장래와 정착촌 문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귀환 문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 문제 등 실질적인 난제들은 모두 후속 회의 과제로 넘겨졌지만, 이들 문제 하나하나가 갖는 ‘폭발적 성격’ 때문에 지난한 협상이 예상된다. 정상끼리 휴전에 합의했지만, 당장 평화 협상의 첫걸음이 될 휴전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가 관건으로 남는다. 팔레스타인 최대 무장단체 하마스의 대변인 무시르 알마스리는 “아바스의 선언은 자치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지 팔레스타인 운동단체들의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다”라며 휴전 선언의 무조건 수용에 반대를 천명했다.
이렇게 이-팔 간의 서로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쪽은 이스라엘 쪽이 가자지구 정착촌에 대한 일방적 철수를 통해 좀더 많은 정착민들이 사는 요르단강 서안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려 한다고 보고 있다. 이스라엘 쪽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포괄적인 무장해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는 반면, 팔레스타인 쪽은 이스라엘이 점령지역에 대한 양보 없이 원하던 폭력 종식 목표만 챙겼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양쪽을 갈라놓는 이런 난제들이 현재의 상황을 언제든지 원점으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비관론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지나갔고 더는 나빠질 게 없다는 사실과 이번만은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두 정상들의 분명한 결의가 이-팔 협상의 새로운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류재훈 기자, 외신종합 hooni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