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지난 2월 중순 이후 북한에 여러 채널로 접촉을 시도했으나 북한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13일(현지시각) 미 정부 고위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바이든 정부가 대북 정책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오는 16~18일(한국시각)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의 한국·일본 방문이 북-미 관계 진전의 새 단초가 될지 주목된다.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고위 관리는 <로이터> 통신에 “2월 중순부터 시작해서 뉴욕을 포함해 여러 채널을 통해” 북한 정권에 접촉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월20일 출범한 바이든 정부가 지난달부터 뉴욕에 있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를 비롯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북한 쪽과 접촉하려 노력했다는 것이다. 이 관리는 그러나 “현재까지 평양으로부터 어떤 반응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관리는 또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말기를 포함해 지난 1년 넘게 “미국의 여러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북-미 사이에 활발한 대화가 없던 걸로 보인다고 전했다.
바이든 정부가 대북 접촉을 시도한 것은 북한과 서둘러 물밑 대화에 나설 의향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바이든 정부는 이를 통해 북한의 무력 도발 등 긴장 고조를 억제하는 한편, 비핵화와 관련한 정확한 의중을 직접 탐색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외정책에서 중국 견제에 최우선 초점을 두고 있는 바이든 정부는 ‘북한 문제는 후순위냐’는 질문에 핵·탄도미사일 위협을 들면서 북한은 우선순위 과제라고 밝혀왔다.
북한은 과거 미국의 새 행정부 출범 초기 때 보였던 행동과 달리 바이든 정부 출범 뒤에는 현재까지 무력 도발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바이든 정부의 막후 접촉 시도에도 침묵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한반도 주변 정세와 미 정부의 새 대북정책 방향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접촉 시도와 북한의 침묵에 관한 보도는 미 외교·국방 수장이 일본(16~17일)과 한국(17~18일)을 차례로 방문하는 일정을 앞두고 나왔다. 이 기간 한-미, 미-일은 각각 외교·국방(2+2) 장관회의를 연다. 특히 미 정부는 블링컨·오스틴 장관의 이번 아시아 방문이 현재 진행중인 대북 정책 검토에 중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성 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대행은 지난 12일 기자들과 전화 브리핑에서 “(블링컨 장관의 한국·일본 방문이) 우리의 (대북 정책 검토) 절차에 우리의 동맹들이 고위급의 의견을 제공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커다란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대북 정책 검토 과정에 한국, 일본 등 동맹들과 긴밀하게 조율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이번 순방은) 우리가 현재 진행 중인 대북 정책 검토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이 한국·일본 방문에서 논의할 내용들이 미 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 과정에 주요하게 반영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북한과의 적극적 관여에, 일본은 강력한 대북 제재 이행에 무게를 두고 있어 미국 정부가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주목된다.
김 차관보 대행은 대북 정책 검토 현황에 대해 “정확한 시간표는 없다”며 “우리는 신속하게 작업하고 있다. 아마 수주 안에 검토를 끝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 정부의 대북 정책 검토가 끝나기 전이긴 하더라도, 블링컨·오스틴 장관 방한 계기에 한-미가 북한을 향해 ‘굳건한 한-미 동맹’ 등 원론적 수준의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
블링컨·오스틴 장관의 한국·일본 방문에서는 북한 문제 외에도 큰 틀에서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과 동맹들의 연대 강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김 차관보 대행은 기자들에게 “그 지역(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의 압력이 증가하고 북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의 위협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 순방은 평화롭고 안정적이고 질서를 증진하기 위해 동맹, 파트너,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과 협력할 의지에 관한 중요한 신호를 보낸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지난 12일 열린 미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 4개국의 첫 쿼드 정상회의 결과도 정의용 외교장관에게 전달할 것이라고 김 차관보 대행은 말했다. 중국 봉쇄를 위한 연대체 성격이 강한 쿼드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지역을 위한 협력을 다짐했다.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3각 협력 강화도 블링컨·오스틴 장관 아시아 순방의 주요 의제가 될 예정이다. 김 차관보 대행은 “블링컨 장관은 우리 동맹들과 관계 개선 뿐 아니라 그들 사이의 관계 개선에 전념하고 있다”며 “특히 한-일 관계는 우리의 안보와 안정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한-일 관계 개선을 보고 싶고 (한-미-일) 3각 협력을 향상할 기회를 창출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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