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15일 도쿄도 지요다구 부도칸에서 열린 정부 주최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해 9월 정부 출범 뒤 처음 참석한 종전(패전) 76주년 전몰자(전사자) 추도식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에 이어 일본의 가해 책임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자위대 강화를 목적으로 한 아베 전 총리의 ‘적극적 평화주의’도 그대로 계승했다.
스가 총리는 15일 도쿄도 지요다구 부도칸(무도관)에서 열린 정부 주최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등 일본의 피해 사실을 설명하며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와 번영은 전몰자 여러분의 고귀한 생명과 고난의 역사 위에 세워진 것임을 잠시라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아베 정부 8년에 이어 스가 총리도 주변국 침략과 한반도 식민지 지배와 같은 가해 사실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이후 일본 총리들은 전몰자 추도식에서 “아시아 국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줬다”, “깊은 반성”과 “애도의 뜻” 등의 표현을 사용했지만, 아베 전 총리가 재집권한 2012년 12월부터 이 표현들은 사라졌다.
스가 총리는 이어 “전쟁의 참화를 두번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앞으로도 지켜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적극적 평화주의 깃발 아래 국제사회와 힘을 합쳐 세계가 직면한 다양한 과제의 해결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가 총리가 언급한 ‘적극적 평화주의’는 2013년 아베 전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헌법 해석 변경에 의욕을 보이면서 처음 도입한 개념인데, 지난해 아베 전 총리가 추도식에서 처음 사용했다. 표면적으로는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에 적극 기여한다는 의미로 읽히지만, 실제로는 자위대의 역할 확대 필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번 스가 총리의 인사말은 ‘아베 계승’을 넘어 사실상 ‘베끼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사라졌던 ‘역사’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한 것과 표현 일부가 달라진 것을 빼고는 거의 같은 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아사히신문>도 이날 “스가 총리 인사말이 문장 끝의 표현을 일부 바꾼 것 외에는 지난해와 많은 부분을 답습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즉위 후 세번째로 참석한 나루히토 일왕은 3년 연속 ‘깊은 반성’을 언급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과거를 돌아보며 깊은 반성 위에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고 밝혔다. 일왕이 전몰자 추도식에서 “깊은 반성”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아키히토 상왕이 일왕으로 재위했을 때인 2015년부터다.
한편, 스가 총리는 이날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봉납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스가 총리는 지난해 10월, 올 4월에도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봉납한 바 있다. 이 밖에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과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 이노우에 신지 국제박람회 담당 대신 등 일본 스가 정부 각료 3명이 이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앞서 지난 13일에는 기시 노부오 방위상과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재생상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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