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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반전열기는 식었지만 ‘꿈’은 나이 먹지 않았다”

등록 2008-01-29 19:31

오키 세이코
오키 세이코
‘9·11테러’ 이후 5년간 신주쿠역 ‘무언평화시위’ 오키 세이코
1969년 2월부터 7월까지 일본 도쿄 신주쿠역 서쪽 입구 지하광장은 ‘반전의 해방구’였다. 매주 토요일 수천명의 학생들이 어깨를 걸고 반전가요를 부르며 베트남전의 부당성을 호소했다. 당시 20살의 앳된 출판사 여사원이었던 오키 세이코도 그 가운데에 있었다. 현재의 남편을 만난 곳도 이곳이었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2003년 2월1일 오키 세이코(59)는 이곳에 다시 돌아왔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되기 한달 전이었다. 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보고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다시 그의 발걸음을 신주쿠역으로 이끈 것이다. 1969년의 뜨거운 열기도, 반전노래도 없지만 그는 지난 5년간 매주 토요일 오후 5~7시 신주쿠역 지상과 서쪽 입구 지하광장에서 무언의 평화시위활동을 계속했다. 오빠가 죽은 날 등 5차례를 빼놓고 지난 5년간 매주 토요일 그는 현장에 있었다.

만 5년째되는 지난 26일 신주쿠 역에서 만난 그는 ‘창조하는 것은 개개의 힘/당신과 그리고 내가’ ‘강자우선의 정치, 전쟁에 돌진하는 정권 뒤집자’라는 두개의 팻말을 앞세우고 있었다. 그는 지난 30여년간 일본 사회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39년전 반전데모를 하면 순식간에 몇배의 인파가 늘어나곤 했었죠. 지금은 선뜻 같이 하려고 하지 않아요. 지나가는 행인들도 발길을 멈추고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은 많지는 않습니다”. 그는 “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집 장만 등 물질에 사로잡히면서 사람에 대한 관대함이나 상호존중 등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일본의 교육은 그것을 일깨워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살 시절 반전과 평화라는 그의 이상과 꿈은 전혀 나이먹지 않았다. “이렇게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사람들이 바라봐주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지만, 동시에 자기를 응시하는 시간이기도 해요. 자기를 마주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확실히 마음이 강해집니다.”

사람들이 너무 무관심해서 낙담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포기하지 말자, 지지 말자”는 마음이 더 강했다. 1960년대 ‘베트남에게 평화를! 시민연합’(베헤렌)이란 반전시민단체를 만든 작가 오다 마코토(지난해 7월 작고)의 영향도 컸다. 오다는 어느날 “각자 열심히 하고 있는데 시민운동이 더 확산되고 강해지지 못하는가”라고 푸념하는 자신의 등을 두들기면서 “네가 하지 않으니까 그렇지”라고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고 한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그의 매주 활동보고서를 보고 1인 시위에 동참하는 ‘동지’들이 늘어나는 것도 버팀목이 됐다. 회사원부터 주부, 프리터(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젊은이)까지 30여명의 다양한 연령층이 수시로 참여하고 있다. 그중 15명 가량은 거의 매주 신주쿠역에 나온다.

사람들의 관심도 조금 늘어나고 있다. 14살 오비 쓰카사와 29살의 여성 사토 리에, 이름을 밝히지 않은 70살의 아파트 관리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세명이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26일 오키의 5주년 시위현장을 찾아와 격려의 말을 전했다. 11개나 되는 질문 항목을 적어와 꼼꼼히 질문을 던진 중학교 2학년생 오비는 “신념을 가지고 활동하는, 존경할만한 분”이라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오키는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언제라는 기한은 없다”고 말했다.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누군가가 무언의 반전평화시위는 계속할 것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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