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6일 출범한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권이 주일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이전 문제라는 암초를 만나 표류하고 있다.
일본과 미국은 2006년 오키나와(沖繩)현 기노완(宜野灣)시에 있는 주일미군 후텐마 비행장을 오는 2014년까지 같은 현 나고(名護)시의 주일미군 슈와브 기지로 이전하기로 합의했으나 하토아마 정권이 이를 재검토하기로 하면서 미국 측이 반발, 양국 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는 "슈와브 기지로의 이전이라는 현행 계획을 전제로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은 5일 "그러면 미국의 신뢰를 잃을 것"이라며 하토야마 총리에게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여기에 미국은 연내에 종전 합의 사항 이행 방침을 밝히라고 압박하고 나섰고, 연립여당인 사민당은 미국 측의 주장을 수용할 경우 "연립정권에서 이탈하겠다"고 퇴로를 차단했다.
하토야마 정권은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상황이다
◇압박 강화하는 미국 = "연내 결론이 불가능하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하토야마 총리와의 신뢰관계가 크게 훼손될 것이다."
지난 4일 오카다 외상, 기타자와 도시미(北澤俊美) 방위상과 자리를 함께한 존 루스 주일 미국대사는 이렇게 말했다.
하토야마 총리가 최근 "연내 결론이 어렵다", "슈와브 이외의 새로운 이전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대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럼에도, 오카다 외상 등은 "미일관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라는 정도의 답변밖에 하지 못했다. 하토야마 총리가 연립정권 유지가 먼저라는 입장을 분명히 한 만큼 연내 결론을 요구하는 미국 측이 원하는 답변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 정부 내에서는 "더는 하토야마 총리를 신뢰할 수 없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대감 고조되는 오키나와 주민 = "조속히 현외 이전을 결정하라."
지난 5일 오키나와현 나고시에 공민회관에서 열린 오카다 외상과 현지 민주당 지지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참석자들 사이에서 이런 요구가 이어졌다.
오카다 외상은 "미국과의 협상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만 반복했고,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야유와 고성까지 나왔다.
이에 앞서 오카다 외상을 만난 이하 요이치(伊波洋一) 기노완시장은 "외상은 매우 쫓기고 있는 인상"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실제로 약속 준수와 재검토를 요구하는 미국과 오키나와 사이에 끼어 있는 오카다 외상은 하토야마 총리가 이 문제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거듭하면서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진 상황이다.
그는 이날 현지 민주당 지지자들과의 회담에서 자신이 추진했던 오키나와현 가데나(嘉手納) 기지로의 통합안의 실현이 어렵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미·일 간 기존 합의했던 슈와브 기지로의 이전 안 밖에 선택방안이 없음을 인정한 것이다.
신설 활주로를 바다 쪽으로 더 옮기는 등의 조건을 전제로 현행 합의를 수용하겠다던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 오키나와현 지사도 현지의 분위기가 급변하자 현외 이전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나카이마 지사 주변에서는 "내년 1월 나고시장 선거에서 (나고시 슈와브 기지로의) 이전 반대를 내건 후보가 당선될 경우 나카이마 지사도 현외 이전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를 둘러싼 혼란은 더욱 심화될 것이 분명하다.
◇하토야마 요지부동에 미·일 동맹 시계 제로 = 외무성과 방위성은 미·일 간 각료급 회의를 통해 기존 합의를 이행하는 쪽으로 연내에 결론을 내도록 하토야마 총리를 압박할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하토야마 총리가 회담이 진행되는 중에 "연내 결론 불가" 방침을 천명하면서 양국 간 협상에도 급제동이 걸렸다. 외무성 간부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허탈해했다.
반면, 미국 측은 의회가 올해 의사일정을 마치는 이달 중순까지, 늦어도 연내에는 기존 합의 준수라는 결론을 낼 것을 더욱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 측은 내년이 미·일 안보조약 개정 50년을 맞게 되는 의미 있는 해이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동맹 강화를 위한 대화의 장에조차 나서지 않겠다는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기타자와 방위상은 5일 총리 공저를 찾아 하토야마 총리와 이런 점들을 설명했다. 오카다 외상도 같은 날 밤 나고시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로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먼저다"라고 하토야마 총리가 현행 계획에 입각해 조기에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연립정권 유지를 급선무로 생각하는 하토야마 총리 측은 연내 결론 도출 압력에 꿈쩍도 않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 측은 "일본이 미국에 벌벌 떨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 측은 "처음부터 연내에 결론을 내라는 것이 무리였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슈와브 기지 이외의 유력한 대안은 전혀 부상하지 않는 상황이다.
일본 내 극우파들 사이에서는 다시 "노무현 정권 당시의 한국처럼 미국과의 관계가 완전히 냉각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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