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공동여당 대표들이 참석하는 '기본정책 각료위원회'를 열어 미일 간 논란이 되고 있는 오키나와 주일미군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년으로 미루기로 정식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종전에 합의한 오키나와 나고시에 있는 슈와브 기지로의 이전을 연내에 재확인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 온 미국의 입장을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미일 관계가 한층 냉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토야마 총리가 방한하여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사를 내보이고 오자와 이지로가 중국과 한국을 방문하여 한중일이 손잡고 새로운 아시아의 질서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가운데 58년을 유지해온 미국과 일본의 굳건한 동맹관계에 균열이 가고 파열음이 들린다.
그러나 고이즈미 전 총리의 "하토야마 정권은 6개월 내에 무너진다" 는 발언과 시진핑 중국 부주석의 일왕면담 신청이 1개월 전에 해야하는 관례를 깨자 아베 전 총리가 면담철회를 요청한 것에서 보듯이 친미파 우익들의 저항도 거센 편이다. 그러면 왜 일본 본토에서 수천킬로나 떨어진 작은 섬인 오키나와의 미군 후텐마 비행장이 문제인지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자.
일본인들은 남단인 나가사키로부터 동북지방 맨 끝인 아오모리까지를 본토라고 하는데 일본 본토 사람들은 오키나와 사람들을 섬사람이라며 옛날부터 차별해왔다. 특히 일류 기업에서는 아직도 인사에 불이익을 준다. 오죽했으면 80년대 중반 더 이상 오키나와 사람들을 차별하지 말라며 일본 국회 앞에서 할복자살한 사람이 있었을까? 그래서 오키나와 사람들의 일본 본토에 대한 불신과 반목의 골은 깊다.
지난 1989년 히로히토 일본왕이 사망했을 때, 오키나와 관공서는 조기를 걸지 않았다. 본토 공무원들은 임시 공휴일이었지만 오키나와 사람들은 누구하나 슬퍼하지 않고 평소처럼 출근했다. 당시 언론들은 깜짝 놀라 이를 대서특필했는데 오키나와 사람들의 대답은 이랬다. "그가 우리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해준 것은 없다. 그가 해준 것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미군에게 협력한 의혹이 있다하여 오키나와인의 3분의1을 죽인 것 외엔 없다. 그런 히로히토를 위해 왜 우리가 조기를 걸어야 하며 왜 그를 기리기 위해 관공서가 문을 닫아야 하는가?"
도저히 일본인이라고 볼 수 없는 이들의 말과 행동은 미군의 오키나와 침공시에 일본군부가 "미군이 들어오면 남자는 다 죽이고 여자는 죄다 강간하니 먼저 죽는 것이 낫다"며 슈류탄을 나누어주고 자살을 강요한 일본군의 태도와 이후 이런 자살명령을 부인해온 일본정부의 태도때문이다. 일본군 10만이상과 오키나와 주민 12만명이 죽은 오키나와의 참혹함은 오키나와를 제물로 삼아 본토의 안전을 꾀한 일본군부의 전략이었다. 일본본토에 미군이 침공하면 오키나와처럼 죽음으로 사수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있던 것이다.
그러나 원폭을 맞은 일본은 사쿠라 꽃이 하루밤 사이에 일제히 지듯이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항복했다. 그 누구도 오키나와 주민들처럼 일가족이 자살하지도 않았고 일본군조차 일체 저항하지도 않고 일사불란하게 항복했으니 속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원통함이 깊은 것이다
. 패전후 오키나와는 섬의 대부분이 미군기지가 되어 버렸다. 더구나 오키나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각종 미군범죄는 주일미군 지위협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미군에게 유리하게 되어있어 오키나와 주민들의 원성이 높았고 이번 후텐마 기지 이전 약속도 자민당 정부가 1995년 미군의 오키나와 소녀 강간사건 때 합의 한 것이다. 일본에서 오키나와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사람은 마루야마 마사오와 함께 일본의 지성으로 불리우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다.
그는 천황제는 일본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 비판하고 전쟁책임을 부인하는 일본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강하게 질타하며 평화헌법 9조를 반대하는 모임을 이끌고있다. 그는 1994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행한 '애매한 일본과 나'라는 제목의 노벨상 수상소감 연설에서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주장한 "신비한 일본"을 비판하고 "일본이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전쟁중의 잔학행위를 책임져야 하고 위험스럽고 기괴한 국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 평화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1970년 펴낸 <오키나와 노트>라는 책을 통해 오키나와 전투 당시 “주민들이 일본군의 명령으로 집단자결했다”고 썼다가 일본 우익들이 당시 일본군 지휘관과 가족들을 부추킨 소송을 당해 재판을 받아왔다. 이재판은 일본의 극우들이 "오키나와 집단자결이 일본군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을 펴고 있고 문부과학성이 역사교과서를 검정하면서 2차대전 중에 오키나와에서 일본군이 주민의 집단자결을 강제명령했다고 기술한 내용에 대해 수정을 요구한 와중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오사카 재판소는 2008년 "당시 오키나와 주민 집단 자살에 군이 깊이 관여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장은 "당시 수비대장 등이 명령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 으나 책의 저자인 오에 겐자부가 '명령이 있었다'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오에 겐자부로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이 발표한 종전조서에는 전쟁책임이나 사과 또는 항복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시아와 일본의 번영을 위해 일어나 아시아인 2000만명을 학살하고 수백만의 일본인을 죽게하고도 일본의 종전은 원폭의 무시무시함 때문이며 일왕이 원폭의 잔인함으로 부터 일본인의 목숨과 본토를 구하기위해서 종전한다는 것이었다. 일왕자신의 전쟁책임이나 억울하게 죽어간 2000만명의 아시아인들에 대한 일체의 사과도 없는 일왕의 항복 선언 즉 종전조서에서 바로 일본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나왔다. 이후 일본은 일관되게 전쟁책임을 부인하고 보상을 거부해왔으니 하토야마 총리나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이 말하는 "과거사를 사죄할 용의가 있다"는 발언은 일본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주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하토야마 총리가 "총리짓 하기 힘들다"는 발언을 보니 산케이 신문이 그가 일본의 노무현이라고 보도한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하토야마는 일본의 신종플루일 뿐이지 미국을 이용하려한 노무현이 될 수 없다. 하토야마는 총선승리를 위해서 오키나와 기지이전 재검토를 공약했을 뿐이고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하기 위해 오키나와가 필요하니 진퇴양난이되어 총리짓 하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하토야마 총리와 일본 민주당이 과연 오키나와 주민들의 원한을 풀어줄 진정한 의사가 있는지 아니면 선거승리를 위한 무작정 공약이었는지는 중요한 관건이다. 자기 처자식과 부모를 먼저 죽이고 자살해야했던 오키나와 주민들의 피맺힌 한은 미국도 일본도 반드시 사과하고 풀어 주어야 할 일이다.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는 중국과 한국에 대해 부단히도 일본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며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표현을 써왔다. 그런데 이들이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일본군이 내린 자결명령을 사과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자국민에게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정치인들이 똑같은 일본군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외국에는 사과한다는 말을 해대니 이들에게서 전혀 진성성을 엿보기 힘들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는 법이고 자국인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명백한 진실까지도 왜곡하는 일본이니 이들이 외국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 민주당 정권은 중국에 접근하여 미국 손아귀에서 벗어나 보통국가로 변신하여 아시아의 깡패국가로 군림하려는 야욕을 접고 먼저 자국민인 오키나와 주민들에 대해서 사과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한다. 어차피 오키나와의 류큐왕국은 19세기 말에 사쓰마 번에 의해 일본에 강제복속된 독립국이었으니 이번 일의 처리결과에 따라 수면아래 잠복해 있던 오키나와 독립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유럽의 번영은 NATO로 똘똘 뭉쳐 소련에 대항했고 유럽내에서 군사적 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유럽에서 영국 독일 프랑스가 군비경쟁과 군사대결을 했다고 생각해보라! 오늘의 유럽번영은 결코 없을 것이고 거기에는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의 진정성이 큰 몫을 했다. 오늘날 유럽은 확실하게 일본을 무시하고 별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미국은 절대로 중국과 대결하지 않고 중국을 세계의 경찰로 불러낼 속셈인데 만약 일본이 미국에게 안보를 맡기고 경제에 전념한다면 빚쟁이 대국에서 벗어나 왕년의 경제대국의 지위를 만회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럴듯하게 포장된 보통국가를 지향하며 미국과 중국을 이간질시켜 남의 나라를 침략할 의사를 가진다면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에 의해 국제적 미아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이제 일본에서는 친미파 우익과 반미파 우익들의 싸움이 본격화 될 것이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반미파 신종극우들은 친미파들과 달라서 일본왕인 천황을 우습게 본다는 것인데 하토야마와 오자와 이치로도 그럴 것이다. 관례와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하토야마가 "일왕 접견은 1달 전 신청"이란 관례를 깬 것은 그 증거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인을 깔보고 중국을 우습게 보던 이제까지의 태도를 버리고 중국에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가서 머리를 조아리는 일본의 태도인데 그속이 너무 보여서 측은하기까지하다. 수없는 우익들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오키나와를 사랑한 오에 겐자부로가 애매모호한 말로 전쟁책임을 부인하는 일본정치인들을 비판함에도 저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직도 애매모호한 말로 상대국을 현혹한다. 일본은 말 한마디 던져놓고 상대방의 속셈을 떠보는 유치한 일본식의 장난에 속을 나라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국 중국과 우호친선을 원하면 유치한 말장난보다는 일왕의 진정한 사죄와 보상이 선결되어야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그는 천황제는 일본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 비판하고 전쟁책임을 부인하는 일본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강하게 질타하며 평화헌법 9조를 반대하는 모임을 이끌고있다. 그는 1994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행한 '애매한 일본과 나'라는 제목의 노벨상 수상소감 연설에서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주장한 "신비한 일본"을 비판하고 "일본이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전쟁중의 잔학행위를 책임져야 하고 위험스럽고 기괴한 국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 평화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1970년 펴낸 <오키나와 노트>라는 책을 통해 오키나와 전투 당시 “주민들이 일본군의 명령으로 집단자결했다”고 썼다가 일본 우익들이 당시 일본군 지휘관과 가족들을 부추킨 소송을 당해 재판을 받아왔다. 이재판은 일본의 극우들이 "오키나와 집단자결이 일본군의 명령 때문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을 펴고 있고 문부과학성이 역사교과서를 검정하면서 2차대전 중에 오키나와에서 일본군이 주민의 집단자결을 강제명령했다고 기술한 내용에 대해 수정을 요구한 와중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오사카 재판소는 2008년 "당시 오키나와 주민 집단 자살에 군이 깊이 관여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장은 "당시 수비대장 등이 명령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 으나 책의 저자인 오에 겐자부가 '명령이 있었다'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오에 겐자부로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일왕이 발표한 종전조서에는 전쟁책임이나 사과 또는 항복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시아와 일본의 번영을 위해 일어나 아시아인 2000만명을 학살하고 수백만의 일본인을 죽게하고도 일본의 종전은 원폭의 무시무시함 때문이며 일왕이 원폭의 잔인함으로 부터 일본인의 목숨과 본토를 구하기위해서 종전한다는 것이었다. 일왕자신의 전쟁책임이나 억울하게 죽어간 2000만명의 아시아인들에 대한 일체의 사과도 없는 일왕의 항복 선언 즉 종전조서에서 바로 일본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나왔다. 이후 일본은 일관되게 전쟁책임을 부인하고 보상을 거부해왔으니 하토야마 총리나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이 말하는 "과거사를 사죄할 용의가 있다"는 발언은 일본의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여주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하토야마 총리가 "총리짓 하기 힘들다"는 발언을 보니 산케이 신문이 그가 일본의 노무현이라고 보도한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하토야마는 일본의 신종플루일 뿐이지 미국을 이용하려한 노무현이 될 수 없다. 하토야마는 총선승리를 위해서 오키나와 기지이전 재검토를 공약했을 뿐이고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하기 위해 오키나와가 필요하니 진퇴양난이되어 총리짓 하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하토야마 총리와 일본 민주당이 과연 오키나와 주민들의 원한을 풀어줄 진정한 의사가 있는지 아니면 선거승리를 위한 무작정 공약이었는지는 중요한 관건이다. 자기 처자식과 부모를 먼저 죽이고 자살해야했던 오키나와 주민들의 피맺힌 한은 미국도 일본도 반드시 사과하고 풀어 주어야 할 일이다. 하토야마 총리와 오자와 이치로는 중국과 한국에 대해 부단히도 일본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며 과거사를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표현을 써왔다. 그런데 이들이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일본군이 내린 자결명령을 사과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자국민에게도 사과하지 않는 일본정치인들이 똑같은 일본군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외국에는 사과한다는 말을 해대니 이들에게서 전혀 진성성을 엿보기 힘들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는 법이고 자국인 오키나와에서 일어난 명백한 진실까지도 왜곡하는 일본이니 이들이 외국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 민주당 정권은 중국에 접근하여 미국 손아귀에서 벗어나 보통국가로 변신하여 아시아의 깡패국가로 군림하려는 야욕을 접고 먼저 자국민인 오키나와 주민들에 대해서 사과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한다. 어차피 오키나와의 류큐왕국은 19세기 말에 사쓰마 번에 의해 일본에 강제복속된 독립국이었으니 이번 일의 처리결과에 따라 수면아래 잠복해 있던 오키나와 독립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유럽의 번영은 NATO로 똘똘 뭉쳐 소련에 대항했고 유럽내에서 군사적 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유럽에서 영국 독일 프랑스가 군비경쟁과 군사대결을 했다고 생각해보라! 오늘의 유럽번영은 결코 없을 것이고 거기에는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의 진정성이 큰 몫을 했다. 오늘날 유럽은 확실하게 일본을 무시하고 별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미국은 절대로 중국과 대결하지 않고 중국을 세계의 경찰로 불러낼 속셈인데 만약 일본이 미국에게 안보를 맡기고 경제에 전념한다면 빚쟁이 대국에서 벗어나 왕년의 경제대국의 지위를 만회할 기회가 있겠지만 그럴듯하게 포장된 보통국가를 지향하며 미국과 중국을 이간질시켜 남의 나라를 침략할 의사를 가진다면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에 의해 국제적 미아가 될 것이 확실하다. 이제 일본에서는 친미파 우익과 반미파 우익들의 싸움이 본격화 될 것이다. 알아두어야 할 것은 반미파 신종극우들은 친미파들과 달라서 일본왕인 천황을 우습게 본다는 것인데 하토야마와 오자와 이치로도 그럴 것이다. 관례와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하토야마가 "일왕 접견은 1달 전 신청"이란 관례를 깬 것은 그 증거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가장 재미있는 사실은 중국인을 깔보고 중국을 우습게 보던 이제까지의 태도를 버리고 중국에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가서 머리를 조아리는 일본의 태도인데 그속이 너무 보여서 측은하기까지하다. 수없는 우익들의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오키나와를 사랑한 오에 겐자부로가 애매모호한 말로 전쟁책임을 부인하는 일본정치인들을 비판함에도 저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직도 애매모호한 말로 상대국을 현혹한다. 일본은 말 한마디 던져놓고 상대방의 속셈을 떠보는 유치한 일본식의 장난에 속을 나라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국 중국과 우호친선을 원하면 유치한 말장난보다는 일왕의 진정한 사죄와 보상이 선결되어야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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