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이하, 조선 이라고 합니다.)의 동향이 주제였던 한 포럼에 참석했습니다. 조선의 동향에 관한 전략적 분석이라는 이름의 이 포럼은 주최가 모 연구재단이었고, 발표자는 일본 방위성 산하의 방위연구소 주임 연구관이었습니다.
오디언스는 대부분이 이른바 `조선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완전공개가 아닌` 형식이었습니다. 한시간 가량의 발표을 듣고 나머지 한시간은 질의 토론 형식이었습니다만, 발표자는 역시 `방위성`연구관 답게, 시종일관,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발표 내용의 많은 부분은 신문지상등에 보도된 일반적인 내용이었습니다만, 중간중간 언뜻 비치는 말들은 의문이 사실로 확인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예를들어,1995년의 조선의 핵개발을 막고,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한 `KEDO(한/조선반도 에너지 개발기구)는 미국이 당시 10년내에 조선이 붕괴될 것이라는 계획을 전제로 만들어낸 하나의 시간 벌기 작전이었다.는 등의 내용이었죠. 올해 초에 있었던 워싱턴에서의 한미일 국방연구자 회의에서 그 실패를 인정했다고합니다. 이 보고자 이외의 일본측 참가자 대부분은 도토리 키재기식의 정보 내용과 분석 능력으로 저는 실소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전 주 미얀마 일본 대사였던 사람의 발언도 그런 내용중 하나로, 얼마전 조선이 실행했던 화폐 디노미네이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조선은 미얀마와 절친한 관계로, 이번 경제정책도 미얀마의 훈수를 받아 실행하게 된 것 같다` 는 뜬금없는 발언을 했습니다. 미얀마가 현재 어떤 상황입니까? 군사정권과 서방의 지원을 받는 이른바 `민주화세력`의 다툼으로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혼란이 거듭되고 있는 입장에서 조선에 대해 `경제정책훈수`를 둔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조선도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전부터 전문관료 양성을 위해 꾸준히 유럽에 인재를 파견 교육해 오며, 유럽식 사민주의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그들이 로동당 내부에서 착실히 실력을 늘이고 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혼란속의 미얀마로 부터 경제정책의 훈수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크게 실망한 것은 오디언스로 참가한 이른바 `조선 전문가`라고 불리는 한국측 인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발언을 들어보니, 냉전사고라는 철지난 신념(?)을 아직도 가보처럼 모시며, 일본의 품에 안겨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징징거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전 통일부 장관이었던 A씨, 이전 국방부에서 조선/일본 정보 작전관이었던 B씨, 재일 한국인으로 일본의 모 대학 교수이며 `조선 전문가`라고 불리는 C씨 등이 그들이었죠.
C씨는, 조선의 인권문제를 운운하며, 사람을 조선에 잠입시켜 이상한 화면을 몰래 찍어와 그것을 일본 매스컴에 팔아 이름을 날린 사람으로, 그날도 조선의 후계자 문제로 삼류 주간지에나 나올 내용으로 조선을 마음껏 비웃었습니다. 결국 어떤 문제 의식도 해결책도 없는 매명(賣名)에만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B씨는 무조건, 한미일이 공조해 `북한공산괴뢰집단`을 섬멸해야 한다는 피끓은 우국충정을 피력하는 사람으로 일당 5만엥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현직을 퇴임하고 나서 일본의 극우성향의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연구하고, 보수성향의 일본의 어느 연구소에서 객원 연구원을 하고 있는 것같았습니다.
A씨가 가장 인상에 남았습니다. 이 사람은 이전 참여 정부 시절에도 일본에 와서 대조선 우호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던 사람이었습니다만, 이날은 마치 봄을 만난듯 자신의 의견을 주장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경제 봉쇄 정책으로 내부붕괴가 멀지 않았던 조선을 살려 지금과 같이 핵무장까지 하게 된것은 중국과, 노무현정권의 대조선 퍼주기로 생긴 결과라고 말하며, 현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을 반대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남북정상회담을 성사하기 위해서는 조선에 식량과 비료등을 주어야 하는데 그것으로 조선은 더욱 기세가 등등해 질것이며, 남북정상회담으로 화해무드가 되면, 지난 10년간의 좌익정권하에서 한국 각지에 뿌리내린 친북 좌파세력이 기승을 부리게 되고 그것은 조선의 `통일전선전략`에 합치되는 것이다. 라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저는 마치, 타임슬립을 한 듯한 기분으로 마치, 중학교 시절 윤리라는 미명하의 반공 교육을 듣는 듯한 착각이 들었죠... 하지만, 이 사람이 통일부 장관을 했던 시절은 `박총통` 시절도, `전장군,노장군` 시절도 아닌 민간정부 시절이었습니다. 군사정권 이후에도 이런 인사가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는 것은 한국 주류의 통일 그리고, 국제 관계에 대한 감각을 알게 하는 하나의 증거로 생각되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조선이 어떤 외교적 행동을 취하면, `대남전략`, `적화통일전술` 로 치부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경수로 문제도 그렇고, 미국은 어디까지나 조선의 봉쇄 내지는 붕괴를 전제로 하는 `전략전술`을 계속해서 구사해 왔습니다. 거기에 대해 조선은 `대조선 압살정책의 폐기`를 주장해 왔지요. 이런 미국의 전술에 항상 앞장서서 조선을 자극해 온 것이 한국과 일본입니다.
특히 일본은, 유일한 조일 관계 개선의 출발점이며, 일본의 전후청산의 중요한 포인트 중의 하나인 `평양선언`을 휴짓조각으로 만들고, 이른바, `납치문제`로 스스로의 동북아에서의 운신의 폭을 닫아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조선의 가운데 서서 스스로가 한/조선반도 평화 정착의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할 한국은 KAL기 폭파 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김현희를 일본의 이른바 납치 피해자 가족과 만나게 해 울고불고 하는 등의 삼류 코미디를 연출하는 이해 못할 행동을 보였습니다.
이른바 `한미일 공조`가 실현 가능한 평화 정착을 위한 행동 없이, 단순히 조선을 자극하고, 미일의 한반도에서의 자국 이익 관철을 위해 쓰여지는 한, 한/조선 반도의 운명은 100년전과 다르다는 보장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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