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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블로그] “이 자식이 혹시 엄마한테 욕하는 건가”

등록 2010-03-08 14:45

살다보면 욕 나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평소에 일본어를 사용할 때도 많다보니 일본어로 욕하고 싶을 때도 없지 않은 데, 아무리 찾아봐도 일본어에는 욕이 없다. 답답하다.

한국어에는 얼마나 욕이 풍부한가.

욕이라는 것이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발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즉, 대상을 필요로 하는 남에게 하는 욕과 자기 혼자 하는 욕이 있는 것이다.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도 그로 인해 자신의 감정의 문제를 해소하려 하는 것일 것이다.

욕의 내용을 보면 창피스러워서 저절로 얼굴이 화끈해 지는 것에서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그 폭력성으로 인간관계를 파괴하게 하는 것, 그로인해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영원한 결별에 이르게 하는 것까지 다양도 하다. 가끔 친근감을 나타내거나 연대감을 돈독히 하기 위해서도 사용될 때도 있는 것을 보면, 욕이라는 것이 반 사회적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마이너스 효과만 작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구사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님) 거의 모든 언어에는 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어, 프랑스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아, 독일어도. 세상에는 5000~8000정도의 많은 수의 언어가 있다고 하니 모든 언어를 조사해 볼 수도 없지만, 욕이 없는 언어가 있을까.

더 재미있는 것은, 수많은 언어의 욕에는 성 적 표현이 아주 풍부하다는 것과, 구체적인 내용으로 성행위, 성기, 근친상간 등등 신기할 정도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각자 알고 있는 (언어의)욕 들을 마음속으로 한 번 읊어보시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유독 일본어에는 이러한 욕이 없다. 있다고 해도, 치쿠쇼(畜生)나 바카(바보) 정도일까. 물론 욕이 없다고 해서 설마 욕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그 주체할 수 없는 욕 기분(?)을 일본사람 들은 어떻게 해소할까.

감정 표현에서 일본인은 좀 특이한 것 같다. 한국사람은 희노애락을 확실하게 나타낸다. 좋아죽겠고 화나서죽겠을 때가 많다. 그 때마다 웃고 울고 화내고, 그 감정을 스트레이트로 발산한다. 나만 해도 그렇다. 좋아 죽겠는데 어떻게 참으란 말인가. 슬퍼 죽겠는데, 싫어 죽겠는데 어떻게 웃어 줄 수 있는 가.

그런데, 일본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감정을 감추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것 같다. 감정이 쉽게 드러나는 것을 경계하며 감정의 기복을 마음 속 깊이 묻어 두고 침묵으로 표현한다. TV에서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그 침착 온화함이 놀라울 정도이다. 혹시 자식을 잃게한 사고가 화가 나지 않거나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우리 어머니는 남동생이 교통사고로 전치 2개월의 부상을 당했을 때, 병원으로 달려가 사지를 총 동원, 전신을 다해 슬퍼하시다가 기절하시기도 했는데.

이러다 보니 혹시 일본인에게는 욕이라는 표현 형식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화가 나도 침묵할 수 있고 더 화가 나면 무시를 한다. ‘침묵’과 ‘무시’ 가 가장 무서운 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욕이 없다고 해서 즉,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며 그 기능도 확실하다. 너무 쉽게 보여주는 우리에게도 좀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그래서 그런지 요즘 아들하고 싸움을 해도 재미가 없다. 옛날에는 야단을 치면 빌고 사과하고 변명도 하곤 하더니, 요즘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침묵으로 일관한다. 무시당하는 것 같아 더 화가 나도 침묵하는 자에게는 이길 도리가 없다.

이 자식이 혹시 엄마한테 욕하는 건가?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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