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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시민들이 들춰낸 ‘추악한 전쟁’의 기억

등록 2010-04-08 10:50수정 2010-04-08 11:15

노보리토연구소의 옛 건물에 메이지대학이 7일 자료관을 열었다. 미국으로 쏘아 보낸  풍선폭탄의 모형이 보인다.
노보리토연구소의 옛 건물에 메이지대학이 7일 자료관을 열었다. 미국으로 쏘아 보낸 풍선폭탄의 모형이 보인다.
1939년부터 생물학무기 개발…패전때 폐쇄뒤 캠퍼스 들어서

지역주민들이 증언·자료 수집…“후세 전하자” 개방노력




한 줄로 늘어선 수도꼭지들이 세면장을 생각나게 하는 작은 방과 ㄷ자형의 작은 미로. 그것만으로는 이곳이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던 옛 일본군의 비밀연구소였다는 것을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애써 모은 증언과 자료들은 이곳에서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알려준다.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메이지대학 이쿠타 캠퍼스 자리에 1939년 세워진 옛 일본 제9 육군기술연구소는 지명을 따 흔히 ‘노보리토 연구소’로 불렸다. 이 연구소에서는 ‘우역’ 바이러스 등을 이용한 생물학 무기를 연구했다. 연구 결과는 부산에 있던 조선총독부 산하 가축위생연구소에서 실험을 해, 실용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때의 생물학 무기 연구는 1945년 일본을 점령한 미군에 그대로 전해져, 한국전쟁 때 사용됐다는 의혹도 있다.

풍선폭탄도 이 연구소가 개발한 것이다. 기구에 폭탄을 매달아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서 터지게 함으로써, 미국을 교란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 일본은 1만여발의 풍선폭탄을 날려, 그중 1000여개가 미국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폭탄이 터져 공원에서 쉬고 있던 민간인이 사망한 일도 있었다. 당시 풍선폭탄을 만드는 일에는 여학생들이 대거 동원됐는데, 장시간 일을 시키기 위해 히로뽕(필로폰)을 투여했다는 증언도 있다. 중국 경제를 교란하기 위해 중국 ‘법화’의 위조지폐를 찍어낸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육군 중장이 지휘한 노보리토 연구소는 1944년 100여동의 건물에 861명이 근무할 정도로 큰 규모였다. 하지만 패전한 일본이 자료를 서둘러 폐기하고, 1951년 그 자리에 메이지대학 캠퍼스가 들어서면서 ‘비밀전’을 이끈 연구소의 존재는 어둠 속에 묻힐 뻔했다.

연구소의 실체를 밝혀낸 것은 이 지역의 고등학생들과 시민들이었다. 1986년 한 평화세미나에서 거론된 이 연구소에 주목한 학생들이 과거 연구소에 근무하던 이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증언을 듣고 자료를 수집해 그 실체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어, ‘노보리토 연구소 보존을 위한 시민회’를 만들어 메이지대학과 함께 자료관 건립을 추진해왔다.

메이지대학은 7일 옛 연구소의 생물학무기 연구동으로 쓰이던 건물에 약 360㎡ 넓이의 ‘평화교육 노보리토 연구소 자료관’을 열어 일반에 개방했다. “전쟁의 본질과, 전쟁 시기 일본군이 행한 활동의 일단을 냉정하게 후세에 전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연구소를 세운 취지다.

가와사키/글·사진 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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