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에 일본 대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졌다. 내가 느끼는 일본 젊은층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엄마가 한류팬으로 드라마를 같이 보고 있다거나 최근 유행하는 K-pop 의 누구 누구를 좋아하는 정도로 한국에 대한 관심은 극히 오락적이고 단순하다 할 수 있는데 그 학생은 독도 즉, 다케시마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야 그의 자유이겠지만 그것을 한국인인 내게 화제삼는 것이 당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렇게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갸륵(?)하기도 해서 화풍(話風)을 관찰해 보니 그다지 불량스럽지는 않았다.
사실 독도문제에 관한 두 나라의 정치 외교적 입장에 대한 의견이야 많이 접할 수 있었지만, 일본 젊은이의 의견을 접하거나 대화할 기회는 많지 않다. 불편한 논쟁을 서로 회피하기 때문일 것이다.
호기심이 생기기도 해서 이야기에 응해줘야 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이다, 그래도 쓸데없이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기 싫어 피해가려 생각하고 있던 차에 그 학생이 내게 먼저,
“다케시마는 명백한 일본 영토잖아요? 그런데, 왜 한국은 다케시마를 한국땅이라고 하는건가요?”
라며 한국사람인 내 의견도 한 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다케시마가 일본땅이라는 신념에 그에 대한 확인과 한국측의 부당함(?)에 대한 해명 요구까지 내게 거침없이 쏟아 놓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그 자식의 멱살을 쥐어잡고 세오이나게(업어치기?)를 해서 마른 땅에 패대기를 치고……. 싶은 욕망이 부울끈 솟아 올랐지만 가까스로 억제하고(내 이성이 원망스럽다^^) 독도(그 학생앞에서는 다케시마라는 호칭을 사용했다)가 한국과 상반된 의견을 가지고 있는 영토분쟁지역이라는 것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알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다면 이런 민감한 문제를 한국인인 그것도 다수의견이 지배하는 일본에서 소수자로 살고있는 나에게 대화를 나눌 의도도 확인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너의 입장만을 쏟아놓는 것은 공정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 “ 했더니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도 고등학교 때 부산에서 서울까지 기차로 한국 횡단을 한 적이 있는데 한국사람들도 자기에게 많이 물어봤다고 한다. 특히 일본어가 통하는 할아버지들은 거의 모두가 독도이야기를 하는데 그 중에 어떤 한 할아버지가 독도가 한국 땅이라고 일본에 가서 널리 알리라고 하셨단다. 그 때 자기는 독도문제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어 자기는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왜 그것도 모르느냐고 화를 내서 무서웠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 어르신들의 ‘독도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 후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다케시마가 일본영토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점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선생님께서 알려주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학생의 심정이야 이해가 가지만 한국사람도 그랬으니까 일본인인 나도 그래도 된다는 식의 논리 전개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시간도 여유치 않아 그 이야기는 나보다는 너와 같은 세대인 한국인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재미있지 않겠느냐? 그 때에는 상대방의 토론 의사를 먼저 확인하고 공정성과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 놓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해 주고 그 학생과 헤어졌다. 사실 불편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그 자리를 모면한 셈이다.
그날 저녁에 아들에게 독도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고 물어봤다. 일본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니 낮에 만난 대학생과 같은 교육환경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그랬더니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는 일본영토로 알고 있다. 교과서에는 실리지는 않았는데 2학년 지리시간에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셨다는 것이다. 뭐 일본학교에서 일본교육을 받고 있으니 그렇게 배웠겠지. 니가 배운것을 수정하는 것이야 뭐가 어려워? ‘한국땅이니까 한국땅이라고’ 알고 있으라고 하면 되는 것이고…
문제는 일본아이들이다.
자기전에 메일을 열어봤더니, 그 학생에게서 메일이 와 있다. 낮에 자신이 경솔했던 것에 대한 사과와 함께 자신이 다케시마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경위 그리고 다케시마에 관한 자신의 지식(국제법상으로 일본영토로 규정된 것과 자국의 영해로 국제적으로 유효한 200해리 경제 수역 논리의 타당성)에 대해 적어보내온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한국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자신이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경쓸 일도 많고 바빠 죽겠는데 뭐 이렇게 진지한거야?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는 독도문제에 대해 일방적으로 일본의 파렴치한 부분에 촛점을 마추어 성토하는 것에는 동참했지만 일본사람들과의 대화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준비를 해 본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먼저 그런 대화를 유도할 생각이 없고,그 학생과 이 문제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만들지 않을 것이지만, 일본에서 살고 있는 한 한국에서 한국사람이 일본사람에게 독도 확인을 하는 것처럼 일본에서도 같은 상황이 일어일어 날 기회가 많아지리라고 생각이 들었다. 조금있으면 교과서 개정으로 초등학생들도 이 문제를 화제 삼을 수도 있는 일이다. 언젠가 회피할 수 없는 기회를 맞게되었을 때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나...
충분한 지식과 논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세종실록 지리지 50페이지 셋째줄을 읽어보시라! 라고 말해 준들 그들의 강한 신념을 어떻게 꺾을 수 있단 말인가.
덕분에 인터넷을 통해 일본 외무성의 독도문제에 대한 견해도 읽어보게 되었다. 자국민이라면 믿어 의심하지 않을 근거가 가득하다. 일본이 지금까지 일삼아왔던 망언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위한 외교적 전략적 망언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망언의 방향의 중요성이다. 독도문제에 관한 일본의 망언은 한국을 향해있는데, 같은 문제에 대한 한국의 망언도 한국을 향해있다는 것이다. 참, 내…
그런데, 그 학생에게 뭐라고 답장을 해 주어야 할까? 한국을 좋아한다고 하니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랏님들처럼 망언으로 대화하자고 할 수도 없고….
독도문제가 지금까지 주로 국가간의 외교적 대화만으로 일관되어 왔는데, 일본이 독도문제를 '국민교육'으로 선택했다. 한국과 일본의 문턱은 날로 낮아지고 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중 일본인이 가장 많고 일본을 찾는 외국인 중 한국인이 가장 많다. 그 외의 만남도 잦아지고 있다.
앞으로는 만남이 잦은 우리들의 대화 특히 한일문제를 짊어지고 갈 젊은이들의 교류를 위한 대화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독도문제에 대한 대화의 이중구조가 심각하게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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