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가까워지려는 노력
예산 등 잡음·스캔들 없어
예산 등 잡음·스캔들 없어
“왕실의 존재는 후진성을 보여주는 거 아닌가요?”
2008년 12월 일본의 한 누리꾼이 야후재팬 게시판에 이런 질문을 올렸다. 하지만 호응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 누리꾼은 “일본 왕실은 살아 있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유지하는 데 기껏해야 내 세금 몇백엔밖에 들지 않는다”고 썼다. 또다른 누리꾼은 “일본에서 100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왕실 이상으로 의미를 가지는 인물이나 물건이 뭐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반응은 일본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왕실의 지위’와 잘 어울린다. 1947년 발효한 일본 헌법은 제1조에 “천황은 일본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전 제국헌법(1889~1945년)에선 “일본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2차 대전에서 패한 뒤 가까스로 살아남은 왕실은 일부에서 계속 제기되던 전쟁책임론을 벗어나기 위해 평화의 상징으로 거듭나려 했고, 국민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해왔다. 나루히토 왕세자와 마사코 왕세자빈의 1993년 결혼식을 국가적인 이벤트로 치른 것도 그 일환이었다. 당시 텔레비전 시청률은 80%에 이르렀다. 최근에는 왕위 승계순위 3위인 히사히토(4) 왕자가 전통적으로 왕실 가족이 다니던 유치원이 아닌 일반 사립유치원에 입학하는 날 일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의 왕실에서 일어나는 ‘스캔들’ 따위는 없다.
왕실의 권위는 여전히 탄탄하다. 6월4일 총리로 지명된 간 나오토가 조각을 8일로 미룬 것도 실은 일왕이 이날 오후 외출했다가 그대로 요양지로 가게 돼 있던 일정과 관련이 있었다. 즉시 조각을 하고 임명식을 치르기 위해 77살 고령의 왕을 돌아오게 했다가는 비난받을 위험이 컸다. 왕실의 흔들리지 않는 지위는 ‘왕은 신의 자손’이라는 종교적 사고도 큰 구실을 한다. 일본 우익들이 ‘국가주의’를 제창할 때 일왕을 앞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왕실의 재산은 모두 국가에 속하고, 비용은 국회 의결을 거쳐 지출되는데 지금껏 비용 문제로 논란이 인 적도 없다. 일본인들이 왕실 존속을 바란다는 사실은 2006년 왕실전범 개정 관련 여론조사에 잘 나타나 있다. 남자로만 왕위를 승계할 경우 손이 끊길 위험에 직면하여 ‘여성 승계’도 할 수 있게 하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75%가량이 찬성했다. 남계로 이어온 ‘만세일계’의 신화를 깨뜨리고라도, 왕이 승계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그만큼 많았던 것이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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