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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요코즈나의 눈물

등록 2010-07-28 09:28

어느 나라이건 구성원이 자연스레 즐기며,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 국가에서 ‘전통’이니, ‘아름다운 우리 문화’라는 의 듣기 좋은 수식어를 붙여 선전하는 것들에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도 ‘아름답지 못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이 ‘국기(國技)’라는 미명을 붙이고 ‘오랜 전통’,‘우리만의 아름다운 문화’라는 그럴듯한 이미지를 심어놓은 스모(씨름)도 그런 종류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스모는 원래 이전 부터 일본의 서민들이 자연스레 즐겨온 오래된 스포츠이기는 하지만, 사실 격투기의 대부분이 그렇듯, 이를테면 동네 건달 또는 패거리들이 관객들에게 돈을 걸게하는 시합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것이 근대에 이르러 메이지 텐노오가 스모 시합을 좋아했다는 이유에서 갑자기 국가에서 지금과 같은 체계와 엄숙성, 형식주의, 국가주의 등을 넣어 이른바 ‘국기’로 포장해 발전(?)시켰습니다. 전통이라고 하지만 결국 비교적 최근에 그렇게 완성된 것이지요.

지난 일요일 끝난 이번 스모 시즌에 우승상을 받은 몽고 출신의 요코즈나(최상위급) 하쿠호는 시상을 받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은 감격의 뜻도 있겠지만, 분하고 억울한 심정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최근에 밝혀지기 시작한 스모계의 불상사등으로 인해 총리대신 상이 생략되고 다른 각종 포상들이 반토막나고 관객도 줄었으며 국민들의 스모에 대한 시선도 좋지 않아지기 시작했다는 것과,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에 대해 개인적으로도 많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모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스모 협회에 많은 돈을 상납(?)하고 인정을 받은 원래 선수인 개인(오야가타)이 열고 있는 헤야(오야가타가 열고 있는 도장)에 입문에 거기서 생활하며 스모를 배워, 선수가 됩니다. 물론 그 도장이라는 곳에서 일어나는 추한 뒷이야기들도 많습니다만, 그것을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2007년 6월 스모 선수가 되기 위해 어느 헤야에 입문해 있던 17세의 소년이 연습중 심폐 정지 상태로 병원에 실려간 1시간 후 사망했습니다. 병원측은 사인을 급성 심부전으로 발표했으나, 소년 부모가 억울함을 호소, 조사에 조사를 거듭한 결과, 소년은 가혹한 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조사에 의하면, 소년은 헤야에서 생활하며, 부조리한 선후배 관계, 구타, 기합등을 못 이겨 고향 집으로 도망을 갑니다만, 부모가 설득해 다시 헤야로 돌아왔으나, 도망갔던 것을 괘씸하게 여긴 오야가타가 그의 선배들에게 지시해 맥주병, 금속배트등으로 구타를 하고, 담뱃불로 지지는등의 가혹 행위를 가했던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습니다.

이런 일본 스모계에 최근 또다시 큰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선수들이 야구 도박등의 불법 도박을 일상적으로 하고, 조직폭력단(야쿠자)들과의 연계, 그리고 스모 시합장의 특등석을 일상적으로 야쿠자 간부들에게 제공해 온 일 등이지요. 사실, 이런 문제들은 이전부터 항간에 회자되어 온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 였습니다만, 이른바, 국기라는 미명, 그리고 장기 집권 자민당과의 밀월 관계등으로 드러 내놓고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죠.

사실, 젊고 혈기 왕성한 선수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보면, 나쁜(?)버릇 한두개 정도는 있을 것이고, 그것이 민폐가 아니라면 한번쯤 눈감아 줄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정권 교체가 되고 아직도 자민당과의 밀월 관계를 잊지 못하는 스모계는 결국 그 문제들을 고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안 스모계는 단순한 ‘민폐’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두운 흑막이 뿌리 깊이 박혀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도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정도이지요. 각종 스캔들의 문제는 차치하고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스모협회`라는 단체의 문제입니다. 이 협회는 스모 선수 출신으로, 오야가타가 된 정치력(?)이 있는 사람들 중 이사를 선출하고, 그 이사들과 이사장이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좀 달라졌지만, 협회의 간부들이라는 사람들은 의무 교육을 간신히 마치고, 일반 사회는 거의 모른채, 평생을 스모만 해오며 각종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신으로 똘똘 뭉쳐 부정 부패, 인권 유린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 좌지우지해 왔습니다. 학력의 중요함을 말씀 드리려는게 아닌, 기본적인 인성 교육이나 사회성, 매니지먼트 능력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돈, 명예, 권력을 안겨주고, 공적인 기관의 제대로 된 감사등도 받지 않게 했을 때, 그 조직의 폐해란 대단한 것입니다. 스모협회는 ‘공익법인’의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면세, 국고 지원의 혜택을 받고 있으며, 공적 자금이라는 시민들의 혈세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공적 감사’조차 형식적으로 받았습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한두건의 사건이야 일어날 수 있다 하더라도, 면세 혜택을 받고, 국고 지원을 받는 곳이 야쿠자와 깊은 유착을 가지고 반 인권적 일들이 태연히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은 간과할 수없는 일입니다. 문제가 불거지자, 이사장을 쉬게하고, 무슨 개혁을 하겠다고 `쇼`를 하고 있습니다만,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거기에 각종 이권을 누려온 관계자들이 있는 한, 하루 아침에 개과천선하고 제대로 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지난번 시즌 우승 시상식때, 공영방송인 NHK의 중계에서, 역시 스모 협회 출신인 해설자가 해설을 하고 있었습니다.

총리대신 상 시상에는 보통 총리가 직접 옵니다만, 그때는 하토야마 전 수상이 그럴 여건이 되지 않아, 관방 부장관이 시상을 하러 나왔습니다. 그가 절차를 좀 틀리자 그 해설자가, ‘역시 민주당은 이런 것도 잘 몰라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냥 웃으며 하는 블랙조크가 아니라 심각한 얼굴로 비웃으며 말하더군요. 그것도 공영 방송의 해설자가…. 평생 스모를 해 왔던 그 해설자의 머릿속에는 아마도 일당 독재를 해온 자민당 ‘어르신’의 모습 밖에는 없었겠지요.

문화, 또는 유구한 전통이란 정치적 이유로 또는 정권의 입맛에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구성원들의 희로애락이 배어 들어 있는 유형, 무형의 것이죠. 그것을 보호하고 이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지, 정치가 만들어 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자칭’ 유구한 전통을 가진 스모가 앞으로도 이어지게 하려 한다면 지금 그대로라면, 머지 않은 장래에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전시품 신세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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