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8m 제방 무용지물 건물 70~80% 파괴 ‘초토화’

뻘밭된 거리 널브러진 잔해
“피난 돕던 공무원 수십명도…”

‘생지옥’ 쓰나미 참사현장

“고~” 하는 굉음과 함께 밀려든 집채만한 파도가 마을을 삼키기가 무섭게 시가지 곳곳에서 화염이 치솟아 불바다로 변한 일본 미야기현 게센누마. 만 12시간이 지난 12일 오전에야 겨우 불길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2m 높이까지 들어찼던 물이 8시부터 빠지기 시작해 폐허가 된 시가지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도로에는 바닷물이 몰고 온 질퍽한 침전물 위로 어시장에서 흘러나온 상어와 참치 덩어리들이 널려 있고, 물웅덩이에선 생선이 헤엄치고 있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헬리콥터로 촬영한 시가지는 일부 콘크리트 건물들을 빼고는 초토화돼 건물 잔해들만 잔뜩 쌓여 있었다. 마치 폭격을 당한 모습이었다. 짠내와 기름내, 연기가 뒤섞인 악취가 풍기는 가운데 엄마를 찾는 여자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간신히 대피한 주민들은 바닷물에 이어 화염이 덮쳐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며 진저리쳤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닥치는 여진 때문에 덜덜 떨면서 연락이 끊긴 가족을 찾느라 터지지 않는 휴대전화만 누르고 있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미나미산리쿠초. 10ｍ 남짓의 파도가 해변에서 약 3㎞ 떨어진 이 해안 마을 전체를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쓸어버렸다. 바닷물은 건물의 3층 높이까지 들어차 중심가를 펄밭으로 바꿔놓았다. 5~8층 규모 콘크리트 건물 몇 동만 흉물스런 골격을 드러내고 있었다.

진앙에서 가장 가까운 이 지역은 대규모 지진과 쓰나미가 생길 때마다 피해를 비껴가지 못했다. 이 때문에 방파제와 방조제, 수문 등으로 대비를 해왔으나, 100년 만에 한 번 발생하는 이런 초대형 쓰나미에는 무용지물이었다.

미야기현과 함께 가장 큰 피해를 본 이와테현에서도 몇몇 지역은 마을 중심지가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평소 백사장과 소나무, 중후한 기와집들의 오래된 거리로 유명한 리쿠젠타카타에 13일 도착한 <아사히신문> 기자는 8000가구 가운데 70~80%가 파괴되고, 시청과 호텔 등 콘크리트 건물 5개동만 덩그러니 서 있다고 전했다. 여기저기 기왓장, 찻잔, 냄비, 캔주스, 어린이용 책상과 시험지가 흩어져 있는 모습에 기자는 “일순 일상생활이 사라진 현실에 할 말을 잃었다”고 전했다. 건물 잔해들은 해안에서 몇㎞ 떨어진 숲 속까지 쓸려가 있었다.

근처 대피소로 피한 73살 주민은 “마을 제방이 8m가 넘어 설마 했는데, 파도가 한순간 넘더니 계속 밀려왔다. 뒤처진 사람들이 휩쓸려가는 모습도 봤다. 전봇대가 차례차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끔찍한 순간을 말했다.

같은 현의 오쓰치초는 쓰나미에 이은 화재로 마을 중심지에 있던 도서관과 주유소 등이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파괴됐다고 <요미우리신문>은 13일 전했다. 이틀이 지났는데도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인근 오쓰치강의 제이아르(JR) 철로는 교각만 남고 사라졌다. 이곳에선 주민들의 피난을 지휘하던 자치단체장을 비롯한 공무원 20여명도 대피가 늦어 바닷물에 쓸려갔다.

박중언 기자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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