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한겨레-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 캠페인] 릴레이 기고 / 와다 하루키
3월11일 아침 <아사히신문>은 1면 머리에 ‘총리에게 불법헌금 의혹, 104만엔 재일한국인한테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날은 도이 류이치 민주당 의원이 일본 정부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그만두라고 요구하는 선언문에 서명한 책임을 지고 원내와 당내 직책을 사임하겠다고 한 사실도 보도됐다.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총리에 대한 재일한국인 헌금 문제를 몇 번이나 거론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마에하라 세이지 외상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불고기집을 경영하는 재일한국인 여성한테서 25만엔의 헌금을 받은 사실을 추궁당한 끝에 외상직을 사임한 게 그 나흘 전이었다. 마에하라 외상에 대한 집요한 추궁은 그가 북조선(북한)과 교섭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았다. 분명 일본의 정치자금 규제법은 외국인의 정치헌금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에 계속 살면서 세금도 내고 있는 지역사회(커뮤니티) 구성원한테서 받은 헌금을 새삼스레 정치가에 대한 공격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수법은 우리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북아시아는 어찌하여 이런 대립감정과 배외주의와 적대행위가 소용돌이치는 지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까. 지난해 9월 센카쿠열도에서 일어난 중국 어선 선장 체포 사건으로 일본-중국 사이에 긴장이 일었다. 11월에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구나시리섬을 방문하자 일본-러시아 사이에도 긴장이 조성됐다. 그리고 11월23일에는 북조선의 연평도 포격이 악몽을 꾸게 만들었다. 나는 지난해부터 일본이 북조선과 무조건 국교를 수립해야 한다, 동북아시아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으나 간 나오토 정권이 그런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기대는 완전히 접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도쿄의 우리 집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려 나는 집 바깥으로 피신했다. 재난 뒤의 도호쿠 지역 풍경은 실로 원자폭탄 투하 뒤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광경 그것이었다. 그 지역 북쪽의 오나가와 원전은 해발 15m 높이에 건설돼 지진해일을 견뎌냈으나 바다 매립지에 세운 남쪽의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해일로 냉각장치가 망가져 잇따라 수소폭발을 일으켰다. 지진과 해일과 원자력 재난 3가지가 도호쿠지방에 괴멸적인 타격을 가했다.
구약성서 욥기 1장21절에 “야훼께서 주셨던 것, 야훼께서 도로 가져가시니”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것은 납치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 씨의 어머니 사키에 씨가 소중히 여기는 구절인데, 그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늘 생각한다. 자연은 주고, 그리고 빼앗아간다. 그 거대한 힘 앞에 인간이 생각해야 할 것은 인간끼리 싸우고 서로 고통을 주는 일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부터 모든 일본인들이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한 채 피해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알았고, 사람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재기하려는 그들의 모습에 감동했다. 일본인이 먼저 자신들의 나라가 어떤 나라여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때가 왔다고 나는 느꼈다.
이 고난 속에서 외국인 체류자들도 특히 힘든 처지가 됐다. 그들이 일본을 탈출하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텔레비전으로 중국의 젊은 여성들이 일본인과 울면서 재회를 약속하며 귀국길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센다이에서 탈출한 남기정 교수가 일본인 난민들을 받아들일 시설을 인천에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 사실도 신문에서 읽었다.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일본을 돕자는 호소와 행동이 눈부시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나는 도호쿠 대지진이라는 1000년에 한 번 있을 고난이 동북아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주고 있다는 걸 느낀다. 죄 있는 자는 죄를 뉘우치고, 원한이 있는 사람은 원한을 넘어서서 화해하고 협력해서 새로운 공동의 집을 짓고 지구, 자연과의 공생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나는 도호쿠 대지진이라는 1000년에 한 번 있을 고난이 동북아시아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주고 있다는 걸 느낀다. 죄 있는 자는 죄를 뉘우치고, 원한이 있는 사람은 원한을 넘어서서 화해하고 협력해서 새로운 공동의 집을 짓고 지구, 자연과의 공생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번역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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