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인터넷판 캡처
뉴욕타임스 “일본이 원전 포기 않는 이유는 보조금과 침묵문화” 보도
일본에서 40여년 전 시마네현 원전 건설계획이 처음 발표됐을 때만 해도 가시마를 비롯한 인근지역 주민들과 어부들이 거세게 반발해 주코쿠 전력은 계획 자체를 포기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로부터 20여년이 지나 원자로 3호기를 건설하려는 계획이 나왔을 때는 상황은 일변했다.
가시마 의회는 15대 2의 압도적 표결로 40억달러짜리 원자로 건설에 찬성했다. 이 지역 어업협동조합이 적극 찬성으로 돌아서는 등 지역주민의 정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원전을 둘러싼 가시마 지역 주민들 정서의 반전은 일본에서는 흔한 이야기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를 경험하고도 54기나 되는 원자로를 건설하고, 3·11 대지진으로 인해 후쿠시마 제1원전이 멜트다운 상태에 놓여 있는 등 지진다발국가인 일본이 지금도 원전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배경에는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정책과 일본 특유의 침묵 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31일 보도했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지난달 6월 지진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지적된 하마오카 원전 운행 중단을 선언하고 에너지정책전문가회의를 설치해서 일본의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경제산업성은 이미 전문가회의 설립 전부터 ‘원전 사수’ 시나리오를 작성해 기존의 원전정책 추진을 강력히 추진중이라고 일본 시사 주간지 <아에라> 최근호가 폭로했다.
원전 보조금은 마약중독
<뉴욕타임스>는 “농업과 어업에 의존하던 지역사회가 손쉽게 얻은 돈과 고소득 일자리에 의해 대체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은 한번 맛들이면 끊을 수 없는 마약중독과 같다”고 비유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피해라는 유산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 미국이나 유럽처럼 원전에 대한 반발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지역사회의 의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후쿠시마대학 시미즈 슈지 교수(공공재정)는 “이런 의존 구조로 인해 지역사회는 원자력 발전소에 반대 의사를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원전 보조금은 대부분 건설 전에 지급되고 건설 뒤에는 줄어들기 때문에 일단 원전을 수용하게 되면 추가 건설 압박을 견딜 수 없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후쿠시마 제1원전을 포함해 원자로 5, 6호기를 수용하고 있는 ‘후타바’의 경우다. 시미즈 교수에 따르면 후쿠시마 제1원전과 인근에 있는 제2원전은 직간접적으로 후타바를 포함해 인근 지역민 1만1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두 가구당 1명 꼴의 고용 규모이다. 후쿠시마현 지역은 1974년 이후 33억달러의 보조금을 받았다. 그러나 1970년대 대부분 전달된 막대한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후타바는 최근 심각한 예산문제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가시마의 경우도 그렇듯이 재산세 등 원전과 관련된 세수 하락과 함께 보조금도 줄어들었다. 2007년까지 후타바는 일본에서 가장 재정적으로 어려운 지역 한 곳이 됐으며 최근에는 파탄 상태에 놓였다. 시 간부들은 보조금이 풍성하게 나오던 시절에 지었던 공공시설의 유지비용 상승과, “보조금은 계속 풍성하게 나올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인된 잘못된 관리운용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1988~2006년 후쿠시마현 지사를 지낸 뒤 원전 비판론자로 돌아선 사토 에이사쿠는 “원전 1호기가 가동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후타바는 더 이상 시장의 월급을 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말했다. 사토 전 지사에 따르면 후타바의 재정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해결책은 정부와 도쿄전력에게 새로운 원자로 2기를 건설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는 8개로 늘어났다. 후타바의 요구에 따라 즉각 새로운 보조금이 지급됐다. 사토는 “마약이라는 표현이 올바른 표현인지는 둘째치고 일단 원전을 받아들이면 궁극적으로 다시 그것을 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가시마 시장 선거 출마경력이 있는 나카무라 에이지는 “가시마시는 경제적 이유 뿐만 아니라 정치적 목적 때문에 보조금의 지속적인 유입에 의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전의 지사들은 선거 때면 건설회사와 가시마시 노동인구의 3분의 1이 소속해 있는 어업협동조합 등과 같은 이권집단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공공사업 일자리와 자금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풍족한 보조금과 일자리, ‘원전 당근’ 인구 7500명의 소규모 어촌인 가시마는 현재 완공되지 않은 원자로 3호기를 수용하는 대가로 3500만달러 규모의 대규모 체육관 시설을 비롯해 야간조명 시설의 야구장과 테니스 코트, 축구장 등을 갖춘 스포츠공원을 얻었다. 체육관은 지역사회가 받은 수억달러 규모의 공공지원 프로젝트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가시마 지역의 이야기가 제시하듯 일본 정부는 지역주민들에게 관대한 보조금과 일자리 제공으로 그들의 동의를 얻거나 최소한 묵인을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경제산업성 통계를 보면, 지난 2009년에만 일본 정부는 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사회에 공공사업 명목으로 11억5000만달러를 제공했는데 전문가들은 이중 대부분이 원전 인근 지역에 배정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원전이 들어서는 지역 주민들은 정부 보조금 뿐 아니라 재산세나 소득세 세수도 배정받고 개인에 대한 보상은 물론 원전 운영업체로부터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익명의 기부금까지 받는다. 이런 보조금이 형편이 어려운 지역사회에 큰 보탬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석유나 석탄 등의 자원이 없는 일본으로서는 경제발전에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원자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지역사회가 중앙정부의 지원에 의존하게 되고 엄격한 안전조처도 요구하기 어렵게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침묵의 코드 침묵의 코드는 가시마 같은 도시에서 현재도 지배하고 있다. 아다치 쓰네요시(61)는 1970~1980년대 원자로 2호기 건설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 동참했다. 1974년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1호기 원자로에서 나오는 염소로 인해 어장의 해초와 고기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민들이 분노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2호기의 보상금이 나오기 시작하자 주민들이 그를 냉담하게 바라보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초 3호기 건설 이야기가 나오자 그를 포함해 아무도 원전에 반대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같은 압박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마네 원전에서도 같은 재난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 우려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원전 없이는 더 이상 시는 유지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도형 선임기자/@aip209
후쿠시마대학 시미즈 슈지 교수(공공재정)는 “이런 의존 구조로 인해 지역사회는 원자력 발전소에 반대 의사를 밝히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원전 보조금은 대부분 건설 전에 지급되고 건설 뒤에는 줄어들기 때문에 일단 원전을 수용하게 되면 추가 건설 압박을 견딜 수 없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후쿠시마 제1원전을 포함해 원자로 5, 6호기를 수용하고 있는 ‘후타바’의 경우다. 시미즈 교수에 따르면 후쿠시마 제1원전과 인근에 있는 제2원전은 직간접적으로 후타바를 포함해 인근 지역민 1만1000명을 고용하고 있다. 두 가구당 1명 꼴의 고용 규모이다. 후쿠시마현 지역은 1974년 이후 33억달러의 보조금을 받았다. 그러나 1970년대 대부분 전달된 막대한 보조금에도 불구하고 후타바는 최근 심각한 예산문제에 직면하기 시작했다. 가시마의 경우도 그렇듯이 재산세 등 원전과 관련된 세수 하락과 함께 보조금도 줄어들었다. 2007년까지 후타바는 일본에서 가장 재정적으로 어려운 지역 한 곳이 됐으며 최근에는 파탄 상태에 놓였다. 시 간부들은 보조금이 풍성하게 나오던 시절에 지었던 공공시설의 유지비용 상승과, “보조금은 계속 풍성하게 나올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인된 잘못된 관리운용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1988~2006년 후쿠시마현 지사를 지낸 뒤 원전 비판론자로 돌아선 사토 에이사쿠는 “원전 1호기가 가동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 후타바는 더 이상 시장의 월급을 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말했다. 사토 전 지사에 따르면 후타바의 재정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해결책은 정부와 도쿄전력에게 새로운 원자로 2기를 건설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는 8개로 늘어났다. 후타바의 요구에 따라 즉각 새로운 보조금이 지급됐다. 사토는 “마약이라는 표현이 올바른 표현인지는 둘째치고 일단 원전을 받아들이면 궁극적으로 다시 그것을 원하게 된다”고 말했다. 가시마 시장 선거 출마경력이 있는 나카무라 에이지는 “가시마시는 경제적 이유 뿐만 아니라 정치적 목적 때문에 보조금의 지속적인 유입에 의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전의 지사들은 선거 때면 건설회사와 가시마시 노동인구의 3분의 1이 소속해 있는 어업협동조합 등과 같은 이권집단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공공사업 일자리와 자금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풍족한 보조금과 일자리, ‘원전 당근’ 인구 7500명의 소규모 어촌인 가시마는 현재 완공되지 않은 원자로 3호기를 수용하는 대가로 3500만달러 규모의 대규모 체육관 시설을 비롯해 야간조명 시설의 야구장과 테니스 코트, 축구장 등을 갖춘 스포츠공원을 얻었다. 체육관은 지역사회가 받은 수억달러 규모의 공공지원 프로젝트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가시마 지역의 이야기가 제시하듯 일본 정부는 지역주민들에게 관대한 보조금과 일자리 제공으로 그들의 동의를 얻거나 최소한 묵인을 효과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경제산업성 통계를 보면, 지난 2009년에만 일본 정부는 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사회에 공공사업 명목으로 11억5000만달러를 제공했는데 전문가들은 이중 대부분이 원전 인근 지역에 배정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원전이 들어서는 지역 주민들은 정부 보조금 뿐 아니라 재산세나 소득세 세수도 배정받고 개인에 대한 보상은 물론 원전 운영업체로부터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익명의 기부금까지 받는다. 이런 보조금이 형편이 어려운 지역사회에 큰 보탬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석유나 석탄 등의 자원이 없는 일본으로서는 경제발전에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원자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지역사회가 중앙정부의 지원에 의존하게 되고 엄격한 안전조처도 요구하기 어렵게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침묵의 코드 침묵의 코드는 가시마 같은 도시에서 현재도 지배하고 있다. 아다치 쓰네요시(61)는 1970~1980년대 원자로 2호기 건설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에 동참했다. 1974년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1호기 원자로에서 나오는 염소로 인해 어장의 해초와 고기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어민들이 분노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2호기의 보상금이 나오기 시작하자 주민들이 그를 냉담하게 바라보고 무시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초 3호기 건설 이야기가 나오자 그를 포함해 아무도 원전에 반대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같은 압박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마네 원전에서도 같은 재난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우리 모두 마음속으로 우려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원전 없이는 더 이상 시는 유지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도형 선임기자/@ai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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