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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일본, 미증유의 대재난 앞에서도 권력다툼

등록 2011-06-02 11:55수정 2011-06-02 12:08

간 나오토 일본 총리. 한겨레 자료 사진
간 나오토 일본 총리. 한겨레 자료 사진
3·11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멜트다운 상태의 후쿠시마 제1원전 사태 등 미증유의 대재난이 계속되고 있는 일본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대미문의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자민당 등 야 3당이 1일 제출한 간 나오토 내각 불신임 결의안에 대해 여당인 민주당의 최대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전 대표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불신임 찬성을 공언하며 반란표를 결집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불신임안은 2일 오후 1시 중의원 본회의에 회부돼 자민당쪽의 불신임안 제안설명 뒤 곧바로 표결처리돼 오후 3시쯤 가부가 판가름될 전망이다.

집권 민주당이 전체 480석 중의원 의석중 절대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오자와·하토야마 파의 반란표가 80표를 넘어설 경우 불신임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 공산당과 사민당이 기권의사를 표명하고 있고,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는 중의원의장과 결원 등을 감안하면 중의원 정원 480석 가운데 가결에 필요한 실제 표결 과반수는 232표이다.

따라서 불신임 결의안 가결에는 여당계 무소속 의원 4명에다 적어도 민주당으로부터 78명의 찬성이 필요하다고 <지지통신>은 전했다. 1일 밤 오자와 전 대표가 소집한 자파의원 모임에는 71명이 참석했으며, 하토야마 전 총리 모임에는 20여 명이 결집했다.

그러나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대재난의 고통 앞에서도 권력투쟁에 몰두하는 정치권에 강한 반감을 표시하고 있어 오자와파 의원들이 파벌 수장의 의지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반란에 동참할지는 두고봐야 한다.

간 나오토 총리 등 자민당 집행부는 불신임안이 통과될 경우 중의원을 해산하고 열흘 이내에 총선에 돌입하는 한편 반란표를 던진 의원들을 제명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오자와 전 대표쪽은 신당 결성 의사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불신임안이 통과되든 안되든 2009년 8월 중의원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자민당의 장기집권 체제를 종식시켰던 민주당의 분열은 집권 2년도 못돼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다시 ‘파괴자 본능’ 드러낸 오자와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전 대표. 한겨레 자료 사진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전 대표. 한겨레 자료 사진
1일 밤 오자와 그룹이 도쿄 도내 호텔에서 개최한 모임에는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장녀로 국민적 인기가 높은 다나카 마키코 전 외상 등 71명이 참석했다. 모임 뒤 오자와 전 대표는 일본 기자단 앞에서 정부의 원전사고 대응을 비판하며 “국민이 지지해준 민주당의 존재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된다. 충분히 우리들의 의사가 국회에서 통과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불신임안 가결에 자신감을 드러냈다. 오자와 그룹은 대리 출석자를 포함해 반란세력 77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오자와 전 대표와 정치적 동지인 하토야마 전 총리도 이날 20여명의 자파 의원들을 모이게 한 뒤 “찬성 이외의 선택지는 없다”고 찬성표 결집을 요청했으나 이견이 속출하자 각자의 의사에 맡기기로 했다.

오자와 전 대표가 자민당과 손잡고 간 나오토 내각 타도의 선봉에 나선 것은 명목상으로는 원전사고 처리 문제를 들고 나왔으나 실제로는 정권 운영에 소외된 데 따른 승부수 던지기 성격이 짙다.

오자와 전 대표는 2009년 중의원 선거 당시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하며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둬 자민당 일당 지배체제를 종식하는 데 1등 공신 노릇을 톡톡히 하며 ‘선거의 신’이라는 별명이 허명이 아니었음을 유감없이 입증했다. 그러나 선거 뒤 그는 추락했다. 정치적 동반자인 하토야마 유키오를 총리로 추대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자신은 정차 후원금 불법처리 문제로 검찰의 수사를 받는 신세가 되면서 보수언론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구태 정치인’ 1순위로 떠올랐다. 특히 후임 총리가 된 간 나오토는 당운영에서 오자와를 철저히 배격했다.

하지만 오자와가 대재난이 계속되는 국민적 위기 상황 속에서 극한 선택을 불사한 데는 ‘파괴자’라는 또 다른 별명에서 나타나듯 반란, 신당결성 및 해체 등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행적과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많다.

오자와는 이미 1993년 자민당 간사장 시절 야당과 손잡고 반란에 성공한 적이 있다. 자민당내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자 그는 사회당 등 야당의 불신임 동의안에 찬성해 미야자와 내각을 쓰러뜨린 뒤 자민당을 탈당해 신생당을 결성했다. 그해 국회 해산 뒤 실시된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패배하자 오자와는 자신이 결성한 신생당과 다른 야당을 규합해 반자민연합정권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반자민연합정권이 내분으로 8개월만에 붕괴된 뒤에는 신진당, 자유당 등 당을 만들고 해산하는 과정을 거듭했다.

여론은 권력다툼 비판   

일본 정치권의 권력다툼을 바라보는 일본 국민들의 눈길은 여느 때보다 싸늘하다. 일본 언론들은 2일 이재민들이 실망과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고 일제히 2일 보도했다. 미야기현 이시노마키 시내의 미나토초등학교에 피난 중인 마쓰카와 신이치로(71)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의 당리당략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경험한 적이 없는 재해였던 만큼 정부도 척척 움직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총리는 애를 쓰고 있으니까 한동안 일을 하게 놔둘 수밖에 없다. 국회를 해산해도 총선거를 할 처지도 아닌데 이런 시기에 국회에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모두 얘기하고 있다.”

센다이시 와카바야시구의 농민인 와타나베 시즈오(59)도 “파벌 투쟁 같은 짓만 해서는 재해복구가 늦어질 것”이라며 “(정치인이) 이재민의 생활을 모르니까 그러는 것 아니냐”고 분노를 표시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1천명에 이르는 미야기현 오나가와초의 한 남성 공무원(39)이 “(정치인들이 하는 짓은) 도호쿠 지방의 재해를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비웃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보도했다.

도호쿠 지방의 자치단체장들도 중앙 정치 무대에서 벌어지는 권력 다툼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무라이 요시히로 미야기현 지사는 1일 저녁 일본 취재진에게 “재해 지역은 한시도 기다리기 어려운 상태”라며 “여야가 협력해 우리들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확실히 일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야기현 등은 정국 불안이 장기화하면 재해 복구 자금 등을 포함한 2차 추경 예산 편성이 늦어질 것이라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호쿠 지방뿐만 아니라 도쿄 시민들도 여야가 벌이는 정쟁에는 신물이 난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다니가키 사다카즈 자민당 총재가 1일 오후 7시께 도쿄시부야 역 앞에서 가두연설을 벌일 때 회색 외투를 입은 한 남성(64·무직)이 “바보 같은 짓은 그만두라”며 “일본인으로서의 긍지가 없느냐. 이럴 때 다리나 잡는 짓을 벌이면 외국에서 웃을 것이다”라고 소리쳤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김도형 선임기자/트위터 @ai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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