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의 날’ 기념식 계기로
친원전 접고 탈원전 성명
친원전 접고 탈원전 성명
1945년 8월9일, 일본 나가사키에 살던 고등학생 마사히토 히로세는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목격했다. 그의 숙모가 피폭 후유증으로 계속해서 코에서 피를 흘리며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도 지켜봤다. 하지만 그는 대부분의 원폭 생존자들처럼 원자력 발전은 매우 안전하고, 나라의 경제성장에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그 믿음은 지난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며 송두리째 날아갔다. 이제 81살이 된 그는 물었다. “또다시 방사선의 위험을 전세계에 경고하는 역할을 하는 것, 그것이 일본의 운명인가요?”
사고 다섯달이 지나도록 침묵하던 일본 원폭 피해자들이 ‘탈원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원폭 66돌을 맞아 지난 6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원폭의 날’ 기념식이 계기였다. 일본 원폭 피해자와 가족의 모임인 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피단협)는 이미 지난달 일본이 탈원전의 길로 가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신규 원전 건설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하기 시작했다. 이 단체 나가사키지부의 야마다 히로타미 사무총장은 “관료와 기업, 언론이 모두 원전의 위험에 대해 우리의 눈을 가렸다”며 “원폭 피해를 입은 국가에서 그들이 우리를 바보 취급하게 놔뒀다”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사실 일본 원폭 피해자들은 그동안 ‘친원전’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였다. 전후의 빠른 복귀와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원전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졌고, 피폭자 모임인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원수협)나 피단협도 핵무기 반대에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원전과 관련해서는 태도 표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애초 기념식에서 강력한 탈원전 메시지를 포함한 ‘평화 선언’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됐던 마쓰이 가즈미 히로시마시장도 “어떤 사람들은 원자력이 인류와 공존할 수 없는 에너지라는 믿음으로 원전을 폐기하기를 바라지만, 더 많은 대체에너지와 원전에 대한 더 강력한 안전기준을 세울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한발짝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폭 피해자들 사이의 기류는 분명히 바뀌고 있다고 언론들은 전한다. 히로시마현 원폭피해자협의회의 아지바 다다오 회장은 “그동안 정부가 선전해온 ‘안전신화’를 믿었지만 후쿠시마 사고 뒤 집을 잃고 떠도는 사람들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며 “나 같은 피해자를 또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탈원전을 주장할 수밖에 없다”고 <요미우리신문>에 말했다.이형섭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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