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교 정상화 뒤 최대 시위
1972년 9월29일 중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이후 중국에서 대규모 반일시위가 일어난 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첫번째 대규모 반일시위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시절인 2005년 3월 하순에 시작돼 4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고이즈미 당시 총리가 2001년 취임 뒤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자 중국은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이때부터 중국에서 반일 감정이 꾸준히 확산됐다.
2005년 3월 한국에서 독도 문제로 반일 시위가 일어나자 중국에서도 역사 교과서 왜곡을 규탄하고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이 일어났다. 4월 들어서는 학생을 중심으로 한 청년들이 베이징과 상하이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에 나서 일부 시위대가 일본 음식점에 난입하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반일시위는 중국 정부가 19일 미신고 집회를 금지하면서 23일께부터 수습 국면에 들어갔다.
2010년 9월7일에는 중국 어선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12해리 안으로 들어가 조업하다 이를 단속하러 나온 일본 해양순시선을 들이받았다. 일본 해상보안청이 그 책임을 물어 선장을 구속하자 중국에서는 ‘센카쿠열도는 중국 영토’라며 다시 한번 대규모 반일시위가 시작됐다.
그해 10월13일 시안에서는 7000여명의 시위대가 일장기를 불태우고, 일본 미즈노 직영점과 일본 음식점의 유리창을 깼다. 이후 26일까지 각지로 시위가 번졌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 조직된 시위는 베이징·상하이·광저우 등 대도시와 내륙 도시에서 격렬히 진행됐다.
그 때문에 학생들의 취업난과 도시의 발전에서 뒤처진 내륙 지방에서 쌓여온 불만이 시위를 키운 한 배경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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