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
‘일제때 상공대신’ 기시 전총리 손자
1995년 ‘침략 사죄’ 무라야마 담화땐
반대 의원모임 사무국장 대리 맡아
1995년 ‘침략 사죄’ 무라야마 담화땐
반대 의원모임 사무국장 대리 맡아
“과거의 한 시기에, 우리 나라는 나라 정책을 그르쳐 전쟁의 길을 걸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떨어뜨렸고, 식민지 지배 및 침략으로 많은 나라, 특히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겼다.”
1995년 8월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가 종전 50년을 맞아 발표한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내용이다. 아베 신조(사진) 일본 총리는 왜 이 담화를 “그대로 계승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일까?
아베 총리는 2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우리 나라가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인식에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는 23일 “침략에 대한 정의는 학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 국가간 관계를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일본의 식민통치와 전쟁 등을 ‘침략’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아베 총리의 이런 생각은 오래된 것이다. 그는 무라야마 담화가 나오던 때 자민당의 비주류 강경파인 ‘전후 50주년 국회의원 연맹’의 사무국장 대리였다. 이 의원모임은 일본 국회가 전후 50년 결의안(‘역사를 교훈으로 삼아, 평화를 위한 결의를 새롭게 한다’, 1995년 7월 국회 가결)을 채택하려 하자 이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1994년 12월1일 결성했다. 연합국 점령체제 아래서 “일본에 대한 단죄와 자학사관을 고쳐, 공정한 사실에 기반한 역사의 흐름을 해명해, 일본 및 일본인의 명예와 자긍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게 결성 취지다. 이 모임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일본의 자위 자존과 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무라야마 담화 발표에 극렬히 반대했다.
1996년 4월 ‘밝은 일본, 국회의원연맹’으로 이름을 바꾼 이 모임은 6월에 “종군 위안부는 없었다.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주장하며, 위안부 문제를 서술한 교과서에 대한 비판과 삭제 운동을 본격화했다. 그해 12월2일 우익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발족하자, 아베 총리는 자민당 간사장 대리로서 적극 지원했다.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아베 총리의 생각은 그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제 시기 도조 히데키 내각의 상공대신으로 전시동원을 지휘한 기시는 패전 뒤 A급 전범 혐의로 3년간 갇혀 있다가 냉전이 시작되며 풀려나 정계에 복귀했다.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정당화하는 것은 기시 전 총리 등을 ‘전범’으로 단죄한 역사를 부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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