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의 보수 우익들이 국민의 불만을 한국으로 돌리게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며 “일본 시민사회에 한국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면 오히려 일본의 우경화를 돕게 된다”고 말했다. 도쿄/정남구 특파원
[한겨레가 만난 사람]
일본서 시민운동 펼치는 이영채 게이센여학원대 교수
일본서 시민운동 펼치는 이영채 게이센여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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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사과하던 일본인 부부
정부는 과거사를 외면해도
국민은 다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일본에는 보수 원류와 함께 ‘리버럴’로 분류되는 현실주의 세력(온건 보수)이 두 개의 큰 줄기를 이뤄 현대 일본을 이끌어왔다. 현실주의자들은 과거사 청산 필요성을 인정해왔다. 그것이 동아시아에 자리잡은 일본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은 자민당 안에서 이들의 입지가 매우 좁아졌고, 야당에도 현실주의자가 적다. 이들의 실험이 실패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 이렇게 됐다고 보는가? “패전한 일본에 대한 연합국의 처리, 일본의 국제사회 복귀,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 등 일본이 과거사를 정리할 세 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애초 식민주의자인 승전국들의 한계, 치열해진 냉전 등의 이유로 일본의 과거사 청산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그 결과 일본은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자민-사회 양당 체제에서는 사회당이 있어 보수 원류의 힘이 덜 드러났지만, 보수 원류가 복귀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사회당이 약해지고, 리버럴한 보수가 약해지자 그들이 지금 전면에 나섰다.” -리버럴한 보수, 현실주의 세력이 퇴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냉전시대에 그들은 국가 운영에서 미·일 동맹을 한 축으로, 한·일 협력을 다른 한 축으로 여겼다. 일본 사회 안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 냉전 붕괴 이후의 시대에 잘 대처하지 못한 것 같다. 1991년 자민당과 사민당, 신당 사키가케가 협력해 북-일 국교 정상화에 성공했다면 틀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고, 자민당과 사회당 모두 붕괴의 위기에 빠졌다. 큰 변수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었다. 일본 안보를 위해서는 미국에만 의존하면 안 되고, 독자적인 자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그러려면 평화의식, 즉 자학적 역사의식을 먼저 깨야 한다고 보수파들은 생각한다. 보수파들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가운데 현실주의 세력이 민주당으로 집결했다. 그러나 2009년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은 일본이 당면한 문제에 무능함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3·11 대지진에 대한 어설픈 대처, 북한 핵문제나 센카쿠열도 중-일 충돌에 대한 대처 등에서 신뢰를 잃어버렸다. 결정적으로 소비세율을 인상해 정체성까지 무너져버렸다.” -아베 신조 총리를 앞세워 새롭게 전면에 나선 보수 원류는 일본을 어디로 이끌고 가는 것인가? “일본 국민들 사이에 평화헌법에 대한 신임이 매우 강하다.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명시하고, 천황을 국가원수로 삼는 헌법 개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평화국가에서 벗어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는 길은 열 것이다. 미국은 중국이 대두하는 동아시아에서 일본이 그런 길을 가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한 일본 시민사회의 인식은 어떤가? “3·11 대지진 복구 때 일본 자위대의 활약은 대단했다. 자위대는 일본에 꼭 필요한 존재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명시하겠다는 것을 저지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일본의 보수 원류가 일본을 ‘보통국가’로 전환시키는 데서 과연 멈출 것이냐가 문제다. “보통국가가 되고 난 뒤에는 ‘강한 국가’로 가려 할 가능성이 있다. 헌법 9조를 깨려고 할 것이다. 이 헌법 조항은 그동안 동아시아의 군비경쟁을 막는 데 큰 구실을 했다.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일본 사회에서 제대로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 시민사회 안에서도 아베 자민당이 의석을 독식한 데 대한 강한 위기의식이 있다. 7월21일 참의원 선거 다음날 <교도통신>이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내각 지지율이 크게 떨어졌다. 견제 심리라고 본다.”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본에서 한국을 대하는 시각이 매우 싸늘해졌다. “일본이 지금 군국주의로 가고 있다고 과대 포장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3·11 대지진 이후 일본 시민사회의 복잡한 마음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장기 불황을 겪은 일본은 3·11 전부터 중국, 한국의 성장에 위기의식을 느껴왔다. 북한도 핵개발로 위협적인 존재가 돼 있다. 대지진과 원전 사고로 현재 3개의 현이 기능 부전 상태다. 안으로 쌓인 분노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일본의 보수 우익들이 국민의 불만을 한국으로 돌리게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동아시안컵 축구경기 때 한국 응원단이 펼침막을 내건 것도 너무 한국 시각으로만 상황을 본 것 같다. 일본 시민사회에 한국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면 오히려 일본의 우경화를 돕게 된다.”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일본 시민사회를 신뢰한다. 나이든 세대에겐 평화운동의 오랜 역사가 있고, 3·11 이후 탈원전운동에 참가하는 젊은 세대가 많다. 평화운동과 탈원전운동이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새 길이 열릴 것이다. 물론 정치판에서는 야당의 재편이 이뤄져야 할 것인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올드 세대는 평화운동의 추억
젊은 세대는 탈원전운동
난 ‘일본의 촛불’을 믿는다
헌법 개정도 쉽진 않을 거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한국 시민사회는 일본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를 갖고 더욱 다양한 접근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 정부도 모든 대화를 끊어선 안 된다. 정부와 전문가 단체, 시민사회가 여러 방향에서 일본과 교류하며 견제를 해도 일본 보수 원류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지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대화도 없이 폭주를 견제할 수는 없다. 대화까지 끊는 것은 방관하는 일이다. 한국이 모든 걸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면, 일본 시민사회도 좋게만 보지는 않는다.” -양국 언론의 최근 보도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일본 언론도 매우 일방적인 보도만 하고 있다. 한국 사회 안의 다양한 생각이 비치지 않는다. 일본 정부·시민사회에 한국의 모습을 일체화시키는 위험이 있다. 한국 언론을 보면서도 같은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일본 문부성이 역사 왜곡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키자 이 교과서의 채택을 저지한 시민운동이 일어나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그렇듯 일본도 여러 모습이 공존한다. 유명한 밴드인 서전 올스타즈가 최근 신곡을 냈는데, ‘주변국의 역사를 배우자, 사이좋게 지내자’는 노랫말을 담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를 경계하고 저지하려는 다양한 모습도 함께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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