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사할린으로 강제동원됐다가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숨진 류흥준씨가 아들 류연상(71)씨의 품에 안긴 채 29일 오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손녀 류혜민(6)양이 울먹이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인천공항/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러시아와 2년 협의끝 첫 봉환
러시아와 2년 협의끝 첫 봉환
68년 만의 귀환이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위원회)는 29일 2년에 걸친 러시아 정부와 협의를 통해 사할린 남부 코르사코프에 묻혀 있던 한국인 강제동원 희생자 한명의 유골을 국내로 봉환했다고 밝혔다. 주인공인 고 류흥준씨의 유골은 27일 사할린 현지에서 화장 작업을 마쳤으며, 29일 오후 6시께 아들 류연상(71)씨의 품에 안겨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해방 이후 사할린 잔류 한국인의 유골이 봉환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고 류흥준씨는 1945년 2월 고향인 전라북도 완주에서 당시 일본 영토이던 사할린 남부 지역으로 강제동원됐다. 반년 뒤 기다리던 해방을 맞았지만 고국행은 실현되지 않았다. 전쟁 직후엔 일본이 사할린에 남은 한국인들을 내팽개치고 일본인들만 귀환시켰고, 이후엔 소련이 자본주의 진영으로 인구 유출을 허용하지 않은 탓이다. 이렇게 해방 이후에도 사할린에 발이 묶여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한국인이 4만3000여명이다.
아버지 없이 완주에서 가난과 싸우며 자리를 잡아가던 아들 류연상씨는 1976년 뜻밖의 엽서 한통을 받았다. 사할린에 억류된 한국인과 한국에 남겨진 가족의 우편 서신을 돕던 일본의 ‘화태(사할린의 일본식 이름) 억류 교포 귀환촉진회’를 통해 부친이 집으로 우편을 보내온 것이다. 기쁨도 잠시. 1년 뒤엔 부친이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이후 1990년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가 이뤄지며 살아남은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류씨의 부친처럼 숨진 이들은 여전히 사할린의 동토 아래 잠든 채였다.
부친의 묘지를 찾으려고 동분서주하던 류연상씨는 2010년 12월 국내 한 언론에 실린 한장의 묘비 사진을 실마리 삼아 기적적으로 묘지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위원회는 이밖에 사할린에 남겨진 한국인의 무덤 6000기를 확인했지만, 올해 말이면 수명을 다하는 위원회의 사정 탓에 추가 유골 봉환은 불투명한 상태다.
사할린 잔류 조선인 문제는 일본이 잘못을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애쓴 거의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30일 천안 망향의 동산에서 열리는 고 류흥준씨 유골 안치식에는 일본과 러시아 대사관 관계자가 참석하기로 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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