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원 와세다대 교수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국교정상화 50년을 맞는 2015년에 대비해 한국 정부는 일본이 위안부 등 역사 문제에서 진전된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외교적 절충과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7일 도쿄 신주쿠구 와세다대 이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길윤형 특파원
[한겨레가 만난 사람] 이종원 와세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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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인들 과거사 잘 몰라
사안 따라 혐한-친한 오락가락
‘아베의 신사 참배 좋지만
외교는 걱정’이라는 어정쩡한 반응 한국, 집단자위권 못 막겠지만
피해는 주지말라 확실히 요구해라
2015년 예고된 아베담화 관련해
지금부터 외교적 싸움 준비해라 -오바마 정권이 들어선지 이제 5년이 됐다 지금의 흐름은 어떤가. “오바마 정권은 전임 부시와는 달라서 중국과 대결 노선이 아니다. 중국을 끌어들이면서 지역의 틀을 만들려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도 여러 흐름이 있어서 군산복합체가 있고, 군부 등은 일본을 군사적으로 확대시키는 게 자기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미중이 경제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현재는 미국이 지역의 안정자 역할을 모색하며 일본이 돌출적인 움직임을 보이면 이를 제어하는 모습이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가장 문제는 역시 일본이다. 아베 정권의 우경화 흐름은 너무 노골적으로 느껴진다. “최근 몇가지 요인이 겹쳤다. 먼저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망이 우경화로 연결된 측면이 있다. 또 하나는 중국의 대두가 예상보다 빨랐다. 2011년부터 중국과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순위가 뒤집히고, 마침 그때 동일본 대지진이 터진다. 안 그래도 잃어버린 10년, 20년 등으로 경제가 어렵고 정치개혁이 좌절되는 등 축적된 불만이 많았는데 이제 일본이 아시아의 일인자가 아니라는 상실감, 대지진의 충격, ‘일본이 이제 약하다’ 자각 등으로 인해 신경질적인 반응이 나오게 된다. 한국도 그런 맥락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나, 천왕 사과 발언 등으로 일본의 표면적인 우경화를 가속시킨 측면이 있다. 이를 일본 우파들이 자신들의 어젠다 실현을 위해 활용하며 지금의 상황이 됐다.” -이에 대한 일본 사회 전체의 반응은 어떤가. “예전엔 일본의 우경화가 ‘흐름’이었지만, 지금은 ‘제도화’가 이뤄지는 단계다. 일반 시민들의 감정은 망설이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반중, 혐한 등의 여론이 강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으로 들어가면 이를 꼭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가는 것은 좋다’고 하지만, ‘외교는 걱정이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즉, 신냉전적인 감정과 공동체적인 이해관계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아베 정권이 만들려는 국가는 무엇인가. “일본의 보수들은 앞서 두 흐름 가운데 신냉전적인 사고에 기반해 있다. 중국은 대두하지만 미국은 후퇴하고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당분간은 미국에 의존하면서 일본의 국가체제를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1990년대부터 등장한 이른바 보통국가론이다. 아베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 보수의 대미의존은 단순한 대미의존은 아니다. 아베 총리에도 어찌 보면 대미 자주노선이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사실 지난 패전, 즉 미국 부정이다. 이들은 일본의 자주적인 역량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평화헌법 때문에 일본은 군사적인 주권이 없으니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경제 등의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그 방향으로 나가자는 게 아베 정권의 생각인 듯하다. 그러나 이는 대중들의 생각보다는 몇발 더 앞으로 나가 있는 것이다.” -우리에겐 당장 눈앞에 닥친 ‘집단적 자위권’이 걱정이다. “올해 봄(4월로 예상)에 총리의 자문기관인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에서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한 보고서를 내놓는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해석 변경을 추진할 것이다. 일부 신중론이 있지만 일본에선 현재 이를 저지할 힘이 없다. 부딪히는 벽이 있다면 하나는 경제이고 또 하나는 외교다. 아베 노믹스는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한다는 것인데 소비세 인상을 하는 등 모순이 내포돼 있다. 아베 노믹스의 부정적인 측면이 먼저 닥쳐 경제에 타격이 오면 아베 프로그램은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또 하나는 외교 마찰 때문에 경제의 충격이 오는 경우다. 이를 제외하면 국내적으로 아베 총리를 견제할 세력이 없다. 결국 한국 입장에서는 비판을 하더라도 새로운 단계를 생각하고 비판해야 한다. 미국은 미중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미국 자체의 군사력이 쇠퇴하니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어느 정도 용인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말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주권적인 사안이고 미일 간의 외교적인 사안이기 때문에 일본이 미국과 상의해 결심하면 하는 것이다. 결국 나눠서 볼 수밖에 없는데 일본이 주권적인 차원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을 우리가 비판할 순 있지만 막을 수는 없다. 단, 한반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되는 부분에서는 명확히 해야 한다. 집단적 자위권은 미국이 공격 받으면 돕는다는 것이니 한국과 상의 없이 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는 된다. 현재 언론 보도를 보면 ‘관계국의 승인을 조건으로 한다’는 식으로 처음엔 신중하게 할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의 군사적 개입이 한반도 상황을 상당히 불안하게 했다는 역사적인 경험도 있으니 이를 분명히 지적해야 한다. 또 당장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이 동아시아의 안보 체제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 안에도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이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방향성이 좋은 구상들이 있다. 한반도나 한일 문제를 지역 틀에서 해소해 간다는 구상인데 이를 빨리 구체화하고 프로그램화해야 한다.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아직은 중도로 되돌아올 가능성도 있으니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당면한 한일간의 문제들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우선 아베 총리가 더 이상 야스쿠니 참배를 못하도록 하는 쐐기를 박아야 한다. 한국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도 있다. 아베 총리가 신사 참배를 하며 “한국, 중국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했고, 고노 담화(위안부 동원과정의 강제성을 인정한 담화), 무라야마 담화(침략과 식민지배의 잘못을 인정한 담화)를 계승한다고도 말하고 있다. 희망이 섞인 전망이긴 하지만 아베 총리도 현재의 외교적 곤경을 벗어나기 위해선 뭔가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해선 미국도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베 총리가 최소한 위안부 문제에서 진지하게 해결책을 고민하는 쪽으로 끌고 가면 상당한 진전이 될 수 있다. 물론 쉽진 않지만 그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또 한일 간에는 2015년을 어떻게 맞을까라는 문제가 있다. 이 해가 한일협정 체결 50주년이고, 일본 입장에선 패전 70주년이다. 이때 아베 담화를 낸다고 한다. 이를 위한 외교적인 절충과 싸움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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