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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자유 남용 안돼” 조항 넣으며 천황·군대 살리기에 온힘

등록 2014-01-16 20:30수정 2014-01-16 21:58

[세계 쏙]‘68년만의 개헌’ 밀어붙이는 아베
메이지 유신 때 제국헌법 제정
패전 이후 평화헌법으로 개정
천황 권위·전쟁 공식적으로 포기

아베, 새해 첫날부터 개헌 강조
‘천황은 일본 원수’로 다시 규정
군대 보유 조항 새로 포함시켜
‘전쟁할 수 있는 일본’ 만들기 야심
‘인권은 침범 불가 권리’ 조항 삭제
“헌법 제정 68년을 맞는 지금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개정이 이뤄지도록 국민적인 논의를 심화해 나가야 한다.”

2014년을 맞는 새해 첫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총리관저(한국의 청와대) 누리집을 통해 올해 국정운영 계획(연두 소감)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단연 세간의 이목을 잡아끈 것은 ‘개헌 논의를 올해부터 시작하겠다’는 구절이었다. 이전까진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의 의석이 개헌 정족수에 미치지 못하는 데다 공명당이 부정적 태도를 취하고 있어, 우선은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매듭지은 뒤 개헌은 ‘중장기 과제’로 넘기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했다.

이날 연두 소감이 나온 뒤 <마이니치신문>은 7일 “자민당이 (개헌에 대한) 공명당의 찬성을 끌어내려고 2012년 4월 만든 헌법 개정안 초안에 등장하는 ‘국방군’이라는 표현을 ‘자위대’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개헌을 위한 당내 물밑 작업이 벌써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아베 정권은 헌법의 어느 조항을 어떻게 바꾼다는 것일까. 이번 개헌의 핵심 쟁점인 ‘천황의 지위’와 ‘군의 구실’을 중심으로 일본 헌법의 변천사를 살펴보자.

일본 헌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메이지 유신이 단행된 지 21년 만인 1889년이었다. 성문헌법을 만들어 국가를 근대화한다는 당시 세계 흐름에 발맞춘 조처였다. 이를 위해 일본은 1882년 이토 히로부미를 유럽에 파견해 각국의 헌법을 시찰하고 오게 한다. 돌아온 이토가 가장 고민한 것은 일본 ‘국체의 핵심’인 천황을 근대적인 법 체제 아래 어떻게 명문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당시 헌법 초안을 작성한 법제국 관료 이노우에 고와시는 고심 끝에 일본이 창조신으로 받드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후손으로 지금껏 끊이지 않고 이어진 ‘천황가의 혈통’에서 지배의 정당성을 찾으려 했다. 그래서 1889년 2월 공포된 <대일본제국헌법> 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이 통치한다”, 3조는 “천황은 신성하며 (그 권위 등이) 침범돼서는 아니 된다”로 정해졌다. 헌법을 통해 일본을 ‘인간의 모습을 가진 신’(現人神)이 다스리는 신국(神國)으로 정의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4조에선 “천황은 국가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람하고, 헌법의 조문에 의해 이를 시행한다”는 조문을 삽입해 일본이 입헌군주국임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천황의 신성을 강조한 헌법 1·3조와 천황의 통치도 법에 의해야 한다는 4조는 처음부터 모순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후 일본의 역사가 증명하듯 승리한 것은 1·3조였다. 일본 군부는 “천황이 육해군을 통수한다”는 헌법 11조의 ‘통수권 규정’을 들어 국민이 선출한 내각의 통제를 벗어나 전쟁의 길로 폭주한 탓이다.

1930년대에 일본 군부는 만주사변(만주의 관동군이 1931년 만주 전역을 점령하고 이듬해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운 사건)을 승인하길 거부하는 이누카이 쓰요시 수상을 참살(5·15사건)하기도 하고, 천황의 친정을 요구하며 원로 중신들을 살해(2·26사건)하는 등 우익 쿠데타 사건을 거듭 일으킨다. 결국 천황의 권위를 등에 업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게 된 군부는 미국을 상대로 무모한 전쟁을 일으켜 국가 전체를 패망의 길로 이끌게 된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에 주둔한 연합군최고사령부(GHQ)에 맡겨진 핵심 과제는 당연히 헌법 개정이었다. 패전 직후인 1945년 10월 취임한 시데하라 기주로 총리는 마쓰모토 조지 박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헌법문제조사연구회를 만들어 헌법 개정을 준비한다. 일본 언론인 히다카 요시키가 당시 연합군최고사령부 민정국(GS)에서 활동한 관계자들을 인터뷰해 펴낸 책 <미국이 일본에 ‘쇼와헌법’을 건넨 진상>(2013년)을 보면, 헌법의 개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미-일의 공방이 실감나게 정리돼 있다.

일본이 자체적으로 만든 마쓰모토 안을 연합국최고사령부에 전달한 때는 1946년 2월1일이었다. 그러나 이 안은 기존 헌법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망한 더글라스 맥아더 사령관은 “일본인들이 헌법을 잘 만들도록 우리가 도와줄 수 있다”며 민정국에 직접 헌법 초안을 작성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면서 초안엔 △천황은 존속하되 상징적인 존재로 남는다 △일본은 전쟁을 포기한다 △귀족제는 폐지한다는 3원칙을 담도록 했다. 이에 따라 25~26명이던 당시 민정국 스태프들이 헌법의 각 부분별로 위원회를 구성해 7일 남짓의 시간을 들여 초안을 만들었다. 이를 건네 받은 일본은 처음엔 큰 당혹감을 드러내지만 결국 미국의 뜻을 받아들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1946년 11월3일 탄생한 <일본국헌법>의 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 국민의 총의에 기반을 둔다”고 정해졌다. 그와 함께 누구도 천황의 권위를 빌려 폭주하지 못하도록 4조에선 “천황은 국정에 관한 권능은 갖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또 9조에선 “육해공군 등 그밖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평화조항을 삽입했다.

그러나 일본의 군사적 재기를 막는다는 새 헌법의 정신은 1948년 냉전의 시작과 함께 흔들렸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미국은 1950년 8월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를 창설한다. 이 조직이 1952년 10월 보안대를 거쳐 1954년 7월 지금의 자위대로 확장해 간다. 이후 미국은 냉전 말기인 1982년 미·일 관계를 군사적 협력이 전제된 ‘동맹’으로 끌어올린 데 이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 자위대를 ‘후방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동원했다. 지금은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상대적 쇠퇴라는 지정학적 변화에 맞서려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통한 일본의 군사적 구실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려는 아베 정권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개헌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자민당의 개헌 구상은 2012년 4월 발표한 <일본국헌법 개정초안>에 집약돼 있다. 이 개정안을 작성한 헌법개정추진본부엔 아베 총리, 아소 다로 부총리 등이 최고 고문, 이시바 시게루 간사장이 부회장으로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개정안을 보면, 1조엔 “천황은 일본의 원수”라는 표현이 포함됐고, 3조엔 “일본의 국기는 일장기, 국가는 기미가요다. 일본 국민은 국기와 국가를 존중해야 한다”며 애국심을 강조하고 있다. 개헌안의 핵심인 9조에 대해선 “전쟁을 포기한다”는 구절을 유지하면서도 이것이 “자위권의 발동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총리를 최고지휘관으로 하는 국방군을 갖는다”는 구절을 새로 추가했다.

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12조에선 “국민은 자유를 남용해선 안 된다. 자유와 권리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른다”는 구절을 삽입하고 헌법 97조인 ‘기본적 인권’ 조항을 전면 삭제한 사실이다. 이 조항에는 “인권은 우리의 선조가 노력해 성취한 것이다. 인권은 공권력에 의해 침범될 수 없는 영구한 권리”라는 표현이 들어 있었다. 이 조항을 삭제하려는 것은 자민당의 개헌안이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만들어 한국에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현실적 고려를 넘어, 일본인들의 자유와 기본적 인권을 옥죌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악법임을 드러낸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한겨레>의 공식 표기는 일왕이지만, 일본 헌법 원문에 ‘천황’으로 표기된 사실을 고려해 일본 헌법을 분석한 이 기사에 한해 천황이란 표기를 썼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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