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일본 도쿄 고토구 ‘유메노시마 공원’에 자리한 제5후쿠류호 전시관에 1954년 3월1일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피폭된 배의 선체와 당시 사용하던 장비, 다양한 반핵 관련 자료 등이 전시돼 있다.
일 ‘미 수소폭탄실험 피해’ 전시관
제5후쿠류호 곳곳 ‘피폭 상흔’
당시 조업선원 23명중 13명 숨져
제5후쿠류호 곳곳 ‘피폭 상흔’
당시 조업선원 23명중 13명 숨져
28일 오전 일본 도쿄 고토구 ‘유메노시마(꿈의 섬) 공원’에 마련된 전시관의 정문을 열고 들어서니, 나무로 된 거대한 선체가 눈앞에 펼쳐진다. 1954년 3월1일 태평양 마셜제도의 비키니 환초에서 이뤄진 미국의 수소폭탄 실험으로 피폭된 일본의 140t급 참치잡이 어선 제5후쿠류마루의 선체다. 안내실의 직원은 “당시 피폭된 선체의 실물이다. 이 지역에 버려져 폐선이 되어 있던 것을 고쳐 1976년부터 이곳에서 전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한 1950년대 중반은 미-소의 핵 경쟁이 시작되던 냉전의 초입이었다. 미국은 그날 오전 6시45분(현지시각) 마셜제도의 비키니 환초에서 ‘브라보’라 이름 붙은 수소폭탄 실험을 진행했다. 폭발과 함께 생긴 버섯구름이 높이 4만m까지 떠올랐고, 주변 200㎞까지 영향이 끼쳤다.
그날 제5후쿠류마루는 폭심에서 동쪽으로 불과 160㎞ 떨어진 해상에서 승무원 23명을 태운 채 조업하고 있었다. 제5후쿠류마루 전시관이 2007년 펴낸 자료집을 보면, 실험이 이뤄진 시간은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인 새벽이었다. 느닷없이 서쪽에서 번쩍하는 섬광이 나타났다. 일부 승무원들은 갑자기 해가 떠오른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방향은 동쪽이 아닌 서쪽이었다. 놀란 마음을 어루만지며 아침식사를 하던 선원들한테 7~8분 뒤 바다를 울리는 강한 충격이 전해져 왔다. 다시 한시간이 지나 강한 방사선을 방출하는 ‘죽음의 재’가 내리기 시작했다. 선원들은 서둘러 그물을 걷고 해역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4~5시간이나 죽음의 재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의 재가 선원들의 피부에 닿거나 눈·코·입에 들어갔다.
피폭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승무원 23명 가운데 무선장이던 구보야마 아이기치(당시 40살)가 피폭 뒤 6개월 만에 숨졌다. 그를 포함해 13명이 간암·간경색·뇌출혈 등으로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이들도 잦은 병치레와 피폭자라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 싸우며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다.
당시 스무살이던 생존자 오이시 마타시치(80)는 26일치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인간은 핵의 무서움을 알면서도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방사능의 피해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이시는 사고 60년이 되는 1일 마셜제도를 방문해 미국의 핵실험으로 피폭된 현지 주민들과 만날 예정이다. 일본에선 도쿄 신주쿠의 일본 청년회관에서 기념행사가 열린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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