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
정지영 감독, 도쿄서 ‘남영동’ 상영뒤 관객들과 대화
고문 장면에 일본 관객들 충격
정감독, 시민들의 주체의식 강조
“눈 똑바로 뜨고 정치인 감시해야”
고문 장면에 일본 관객들 충격
정감독, 시민들의 주체의식 강조
“눈 똑바로 뜨고 정치인 감시해야”
“여러분 힘드셨죠. 힘들게 해서 죄송합니다.” 지난 28일 밤 도쿄 시부야에 자리잡은 소극장 ‘업링크’는 깊은 정적 속에 잠겼다. 고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2일 동안 받은 고문을 바탕으로 한 영화 <남영동 1985>(2012년)의 상영이 끝난 순간이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일본인 관객들은 처참한 고문에 무너져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훌쩍였고 때로는 비명을 질렀다. 정지영(68·사진) 감독은 이어진 일본 관객들과의 대화 마당에서 잔혹한 고문 장면에 충격을 받은 이들을 다독이며 대화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욘사마’와 동방신기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한-일 관계가 전례 없이 냉담해진 오늘, ‘한류’란 양국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그동안 빨치산(<남부군>·1990년)과 베트남 전쟁(<하얀전쟁>·1993년)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굴곡들을 정면으로 응시해 온 정 감독이 관객들에게 강조한 것은 시민들의 ‘주체의식’이었다.
그는 “87년 6·10항쟁 이전엔 자신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몰랐던 한국 시민들이 국가를 상대로 승리하고 난 뒤 주인임을 깨달았던 것 같다”며 “그 덕분에 국민들의 힘을 믿고 <남부군>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주연배우 안성기씨가 언 개울물에 세번이나 들어가야 했던 사연 등 영화 제작 에피소드를 소개하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화제는 92년 도쿄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감독상을 수상한 <하얀전쟁>으로 이어졌다. 그는 “이전까지 한국인들은 우리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것은 베트남인의 자유와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모두가 아는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 세대들에게) 거짓으로 역사를 가르칠 순 없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애국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이들로부터 ‘왜 한국의 슬픈 부분을 들춰내서 영화를 만드느냐’는 비난도 들었다”고 말했다.
한 일본인 관객은 그에게 “이처럼 실화를 다루는 것은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냐”고 물었다. 이에 정 감독은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가 제대로 사람대접을 받고 살고 있느냐는 의문이 계속 들기 때문”이라며 “우리를 파괴하는 제도, 시스템, 권력 등을 파헤쳐 고발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주의는 정치가들에 의해 늘 위협받는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더라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국민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 그들을 감시해야 한다”는 말로 대화를 마쳤다.
아베 정권의 역사 수정주의와 ‘세월호 사건’에서 확인된 박근혜 정권의 무능 등 한·일 양국에서 시민연대의 중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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