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원전 마피아’ 파문
간사이전력 전 부사장 양심고백
“1990년까지 정치권 수억엔 헌금”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고백 계기
간사이전력 전 부사장 양심고백
“1990년까지 정치권 수억엔 헌금”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고백 계기
“(정치인들에게 정치자금을 헌납하는 게)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일본 간사이전력에서 30년 넘게 정계를 담당해 왔던 나이토 치모리(91) 전 부사장이 1972년부터 18년 동안 “(모두 7명의 총리에게) 해마다 2000만엔을 정치자금으로 지급했다. 매년 정계에 뿌린 돈이 수억엔이 넘는다”고 증언했다고 <아사히신문>이 28일 보도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돌던 일본 정계와 전력회사 사이의 ‘검은 유착’을 실증하는 증언으로 판단된다. 이 기간에 총리를 지낸 인물은 64·65대 다나카 가쿠에이(재임기간 1972~1974년)부터 74대 총리인 다케시다 노보루(1987~1989)까지다. 이 가운데 생존자는 71~73대 총리인 나카소네 야스히로(1982~1987)가 유일하다.
나이토 전 부사장은 1947년 교토대 졸업 이후 간사이전력의 전신인 간사이배전에 입사해 30년 넘게 전력 회사와 정계를 잇는 파이프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이 같은 사실을 증언한 이유에 대해 “2011년 3월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발생한 뒤 일본에서 진행 중인 ‘혼란’을 목격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고 이후 정부의 대응이 가당찮았다. 왜 지금껏 오염수가 통제되지 않는가. 지질 조사를 했을 텐데 왜 지하수의 영향이 큰 곳에 원전을 지었나. (원전 건설에 대한) 정부의 감독이 엄밀하지 않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정-관-전력회사 3자 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일본에선 정계, 관계, 재계, 학계를 망라하는 ‘원전 마피아’가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도 국가의 원전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지난 16일 안전대책 부실을 지적하는 여러 목소리에도 가고시마현에 위치한 규슈전력 센다이 원전 1·2호기가 새로운 원전 ‘규제 기준’을 충족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보 전진”이라고 환영했고, 10월 원전 재가동이 현실화된 분위기다.
나이토 전 부사장은 실제 정치자금 헌납 과정에 대해서도 매우 세밀하게 묘사했다. 상납은 매년 ‘백중과 연말’을 맞아 ‘인사’(떡값)라는 명목으로 한 사람당 200만엔에서 1000만엔(총리급) 규모에서 이뤄졌다. 대상도 총리, 관방장관을 비롯해 자민당의 간사장, 정조회당, 야당 간부 등 광범위했다. 그는 “(내가 직접 관계된 상납만) 1년에 14~15명 정도였다. 총리의 경우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이른 아침에 자택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당시 기업이 정치인에게 헌금을 하는 게 불법은 아니었지만, 전력 회사들은 1974년 정치헌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나이토는 “전력 회사 내부에선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정치가를 적으로 돌려선 안 된다”는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그는 정치 자금을 “구체적인 목적 때문에 준 것”이라기보다는 “(정부가 원전 인허가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약처럼 시간을 두고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증언에서 이름이 언급된 전직 총리 쪽 관계자들은 “처음 듣는 얘기다” “규정을 지켜가며 받은 돈”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신문은 전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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