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외교정책 기조와 참모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교 참모’들은 어떤 이들일까. 전문가들은 야치 쇼타로(70) 국가안전보장국장(내각 특별고문), 가네하라 노부가쓰(55) 국가안전보장국 차장(내각관방 부장관보), 사이키 아키타카(62) 외무성 사무차관 등을 아베 정권의 핵심 ‘외교 브레인’으로 꼽고 있다. 야치 국장과 가네하라 부장관보는 총리관저에서 외교 전략의 큰 틀을 짜면, 사이키 차관이 외무성 조직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는 진용이다. 이들 외무성 출신의 전문 관료들이 ‘전후 체제의 탈각’을 희망하는 아베 총리의 신념을 정책으로 실현하고 있다.
야치 국장은 아베 정권 외교 정책의 큰 틀을 정립한 이른바 ‘아베의 외교 책사’로 알려져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직후인 지난 5월 러-일 관계의 악화를 막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하는 등 외무성이 직접 나서기 힘든 중요한 사안에 직접 구원투수로 등장하기도 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시절 ‘평양선언’을 이끌어낸 다나카 히토시 일본종합연구소 국제전략연구소 이사장의 외무성 동기기도 하다.
다나카가 이념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라면, 야치는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을 중시하는 ‘가치관 외교’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즉, 미일동맹을 일본 외교의 중심축으로 놓고 자유, 인권, 민주주의, 법치 등의 보편적인 가치에 동의하는 국가들을 상대로 다각적인 전략적 외교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집단적 자위권과 ‘적극적 평화주의’에 대한 동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아베 총리가 전 세계를 누비는 ‘세계지도를 부감하는 외교’라는 형태로 구체화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9월6~8일로 예정된 방글라데시·스리랑카 방문을 마치면 집권 1년9개월 만에 49개국을 방문해 역대 일본 총리 가운데 가장 많은 국가를 방문한 총리가 된다. 그러나 야치의 가치관 외교는 중국 포위 전략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가네하라는 외무성 시절부터 야치와 가까운 외교 관료들을 일컫는 ‘팀 야치’의 핵심 일원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인데도 2012년 12월 아베 총리 집권 이후 국제법국장에서 내각장관부장관보로 발탁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아베 총리와 사이키 사무차관의 인연은 2002년 9월 고이즈미 전 총리의 평양 방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일본에선 북한과의 국교 정상화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 다나카 국장 등의 협상파와 납치 문제 해결이 더 중요하다는 아베 관방부장관의 강경파가 대립하고 있었다. 강경파였던 사이키 차관은 다나카 국장이 이끌던 아시아대양주국의 참사관이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납치 문제를 인정한 뒤 일본 여론이 악화되며 대북 정책이 강경론으로 급격히 선화하자 사이키 참사관은 ‘납치 문제’를 연결고리로 아베 총리와 극적으로 가까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사이키 차관은 2012년 12월 아베 2차 내각이 발족하자 외무성 사무차관으로 기용된다. 현재 북일 접촉 과정에서도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정치인 중에선 에토 세이이치 총리 보좌관(참의원 의원)이 아베 총리의 ‘소울 메이트’로 불린다. 둘은 젊은 시절부터 헌법 개정, 역사 인식, 안보 정책 등 기본적인 정치 이념을 공유해왔다. 에토 보좌관은 지난 2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아베 총리에 대해 미국이 “실망했다”고 비난하자 “오히려 실망한 것은 우리”라는 유튜브 동영상을 올려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는 상당한 다혈질로 민주당 정권 시절이던 2011년 2월엔 한국 국회의원들이 북방영토를 방문하려는 계획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캐묻다, 다카노 미쓰루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 심의관이 잠시 옆사람과 대화를 하자 “ 진심으로 국익을 지키려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며 얼굴에 물을 끼얹기도 했다. 그밖에 이지마 이사오 내각관방 참여, 지난 5월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한 기타오카 신이치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이하 간담회) 좌장 대리 등도 아베 총리의 외교 정책에 영향을 주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외교 정책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친 이는 측근이 아닌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아베 총리는 2006년 펴낸 <아름다운 나라에> 등에서 기시 전 총리가 추진한 1960년 미일 안보조약 개정에 대해 “(불평등한) 노예적 조약을 대등한 것으로 바꾼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현재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의 밑바탕에는 ‘대등한 미일 관계’를 구축해 전후 체제에서 탈각해야 한다는 외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오랜 신념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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