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서 여성 노예사냥” 일 동원부장의 증언
신빙성 논란에 폐기…96년 유엔보고서엔 실려
신빙성 논란에 폐기…96년 유엔보고서엔 실려
지난 8월 초 <아사히신문>의 ‘요시다 증언’ 오보 인정 파문이 결국 일본 정부가 유엔 인권위원회의 보고서 철회까지 요구하는 이례적인 국제 스캔들로 확대된 것은 지난 20여년 동안 지속돼 온 위안부 논쟁에서 이 증언이 차지하고 있는 ‘독특한 위치’ 때문이다.
현재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간 또는 일본과 국제사회 사이에 의견이 어긋나는 핵심 쟁점은 일본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질 것인지 여부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이 만들고 운영해온 위안부 제도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는 ‘도의적 책임’의 영역이지 ‘법적 책임’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관헌을 동원해 직접 여성들을 폭력적으로 강제동원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의 연장선상에서 일본 정부가 도의적 책임을 인정한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해 이 문제는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선 추가적으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양국간 청구권 문제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논리를 덧붙인다.
여기서 쟁점이 된 것이 ‘요시다 증언’이다. 요시다 증언을 내놓은 이는 일제 시기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시모노세키 지부에서 동원부장으로 일했다고 알려진 요시다 세이지(2000년 사망)다. 그는 1983년 펴낸 <나의 전쟁범죄, 조선인 강제연행> 등의 책에서 제주도에서 여성들을 사냥하듯 연행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 바 있다. 위안부 문제가 알려지기 시작한 1990년대 초엔 기존 연구 부족 등의 이유로 이 증언을 활용했지만, 중반 이후엔 “증언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사실상 증언을 폐기한 바 있다.
그러나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엔 “자신이 (위안부 여성들을 강제동원하는) 노예사냥에 참여했다”는 요시다의 증언과 “일본 정부가 20여만명의 한국 여성들을 군의 성노예로 징용했다”는 언급이 포함돼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를 문제 삼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를 통해 “위안부는 성노예였다”는 잘못된 견해가 국제사회에 퍼졌고, 일본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상황에 몰렸다고 주장한다. <아사히신문>의 오보 인정 이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에 대한 근거 없는 중상이 세계에서 행해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배경 때문이다. 자민당은 15일 요시다 증언의 국제적 영향을 검증하기 위한 특명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하고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위원장을 맡도록 했다.
그러나 현재 국제사회에선 일본 정부가 위안소 제도를 운영했다는 것 자체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여론 뒤집기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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