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산당 이케우치 의원. 사진 <아카하타> 제공
[인터뷰] 일본 공산당 이케우치 의원
“이케, 이케, 이케(가자, 가자, 가자), 이케우치 사오리!”
지난달 14일 일본 중의원 선거를 하루 앞둔 13일 밤 일본 도쿄 제이아르(JR) 신주쿠역 동쪽 출입구. 일본공산당의 마지막 유세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일본공산당의 ‘젊은피’ 이케우치 사오리(32·사진)였다. 중·참의원 선거를 합쳐 네 차례의 도전 끝에 국회에 입성한 이케우치 의원은 “아베 정권의 폭주에 끝까지 반대해 온 일본공산당의 일관된 모습이 여러 사람들에게 인정 받아 이번 선거 때 약진이 가능했다”며 “앞으로 헤이트 스피치(인종차별을 조장하는 집회)와 역사 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의정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4번 도전만에 국회 입성한 ‘젊은피’
“대학때 전쟁반대 소설 읽고 입당
정부, 위안부 등 역사 잘못 인정해야” -네번의 도전 끝에 첫 당선이다. 선거 기간 유권자들의 큰 지지를 받아 화제가 됐는데. “내 선거구인 도쿄 12구(북구와 아다치구를 합친 지역)나 도쿄 전 지역에서 일본공산당에 대한 기대와 아베 신조 정권에 맞서 어떻게든 이 나라의 진로를 바꿔야 한다는 시민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12구에는 (지난 2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61만표를 얻었던) 다모가미 도시오 차세대의 당 후보가 있었다. 득표수에서 그를 눌렀다는 점이 이번 선거에서 일본 국민들이 모여준 또 하나의 민의라고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 등 지난 역사의 잘못을 받아들이는 게 일본에 매우 중요하다.”(다모가미 후보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발언 등으로 지난 도지사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공산당의 약진 이유는 뭔가. “2013년 12월6월 아베 정권이 특정비밀보호법을 강행 통과시켰다. 당시 국회에서 유일하게 반대 토론을 했던 게 공산당의 니히 소헤이 의원(참의원)이었다. 그날 밤 많은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여 항의 집회를 진행했는데 모두가 숨죽여 스마트폰으로 니히 의원의 연설을 듣는 모습을 보고, 일본의 평화를 지키고 아시아의 우호를 소중히 하는 시민들의 이 공유된 마음은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아베 정권의 폭주에 정면으로 맞서온 일본공산당의 일관된 모습에 많은 분들이 신뢰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산당 입당 계기는? “대학교 때 공산당원이었던 고바야시 타키지(1903~1933)의 소설 <게공선>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 고바야시처럼 전쟁에 반대해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통해 일본공산당이라는 정당을 접하게 됐다. 일본의 주인공은 인민이고, 이런 역사를 만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 ‘그럼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결국 2004년 대학 4학년 때 입당을 결심했다.” -위안부 문제 등 역사 문제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땐 교과서에 위안부와 관련된 기술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위안부가 뭔지는 알았지만 이미 끝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시절 (위안부 문제 연구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의 수업을 들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중국인 위안부 여성이 제기한 재판에 방청하러 가는 등 지원활동에 참가했다. 지난 역사와 제대로 마주하는 것은 국가의 기초다. 아베 정권의 역사 역행 움직임은 용서하기 힘들다.” 도쿄/글 길윤형 특파원
“대학때 전쟁반대 소설 읽고 입당
정부, 위안부 등 역사 잘못 인정해야” -네번의 도전 끝에 첫 당선이다. 선거 기간 유권자들의 큰 지지를 받아 화제가 됐는데. “내 선거구인 도쿄 12구(북구와 아다치구를 합친 지역)나 도쿄 전 지역에서 일본공산당에 대한 기대와 아베 신조 정권에 맞서 어떻게든 이 나라의 진로를 바꿔야 한다는 시민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12구에는 (지난 2월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61만표를 얻었던) 다모가미 도시오 차세대의 당 후보가 있었다. 득표수에서 그를 눌렀다는 점이 이번 선거에서 일본 국민들이 모여준 또 하나의 민의라고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 등 지난 역사의 잘못을 받아들이는 게 일본에 매우 중요하다.”(다모가미 후보는 일본의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발언 등으로 지난 도지사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공산당의 약진 이유는 뭔가. “2013년 12월6월 아베 정권이 특정비밀보호법을 강행 통과시켰다. 당시 국회에서 유일하게 반대 토론을 했던 게 공산당의 니히 소헤이 의원(참의원)이었다. 그날 밤 많은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여 항의 집회를 진행했는데 모두가 숨죽여 스마트폰으로 니히 의원의 연설을 듣는 모습을 보고, 일본의 평화를 지키고 아시아의 우호를 소중히 하는 시민들의 이 공유된 마음은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아베 정권의 폭주에 정면으로 맞서온 일본공산당의 일관된 모습에 많은 분들이 신뢰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산당 입당 계기는? “대학교 때 공산당원이었던 고바야시 타키지(1903~1933)의 소설 <게공선>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 고바야시처럼 전쟁에 반대해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를 통해 일본공산당이라는 정당을 접하게 됐다. 일본의 주인공은 인민이고, 이런 역사를 만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 ‘그럼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결국 2004년 대학 4학년 때 입당을 결심했다.” -위안부 문제 등 역사 문제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땐 교과서에 위안부와 관련된 기술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위안부가 뭔지는 알았지만 이미 끝난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시절 (위안부 문제 연구자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의 수업을 들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중국인 위안부 여성이 제기한 재판에 방청하러 가는 등 지원활동에 참가했다. 지난 역사와 제대로 마주하는 것은 국가의 기초다. 아베 정권의 역사 역행 움직임은 용서하기 힘들다.” 도쿄/글 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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