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한·일 단체들이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의 내용을 ‘분명한 사실관계 인정과 배상’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법적 책임을 둘러싼 기존 요구를 다소 완화한 것으로 일본 정부의 향후 반응이 주목된다.
그동안 한·일 양국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을 이끌어 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일본의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전국행동(전국행동)은 23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 참의원 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새로운 해결책을 공개했다. 여기엔 일본 정부가 △일본 정부와 군이 군시설로서 위안소를 입안·설치·관리·통제했다는 것 △여성들이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됐고 위안소 등에서 강제적인 상황에 놓여 있었다는 것 등의 사실을 인정할 것과, 이를 토대로 △뒤집을 수 없는 명확하고 공식적인 방법으로 사죄할 것 △사죄의 증거로 피해자에게 배상할 것 △위안부 관련 내용을 교과서에 기술할 것 등의 요구가 담겨 있다. 그동안 정대협은 △일본 국회 결의에 의한 사죄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책임자 처벌 등 7대 요구 사항을 내걸어 왔으나, 이번 새 해법에선 이를 제외했다. 이 안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한-일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이 단체들이 기존 요구를 완화해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안은 한·일 위안부 문제 관련 단체들이 2012년 7월부터 2013년 8월까지 양국을 오가며 네차례의 회의를 한 결과를 종합한 것이다. 양징자 전국행동 공동대표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제도에 관해 우리가 요구하는 사실관계를 인정하고 당연한 조처로 배상을 한다면 그것이 곧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는 게 우리의 견해”라고 말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도 “애초 일본 정부의 법적인 사죄를 요구해 왔던 (위안부 관련 단체들의) 요구가 (여성들이) 의사에 반해 위안소에 모집됐음을 인정하라 등의 표현으로 바뀌었다. 이는 해결책에 가까운 안”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은 1965년 한-일 협정에 의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세를 보여왔다. 이 안은 일본 정부가 거부하는 법적 책임이라는 용어를 사실상 포기하는 대신 이를 현실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안이어서 일본 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이날 회견에 참석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0) 할머니는 “아베 총리도 마음을 돌려서 과거의 잘못은 잘못했다고 해야 한·일 양국이 화합하고 지낼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