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중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6일 보스턴에 있는 JFK도서관을 방문하는 모습.(왼쪽)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 21일 워싱턴 의사당을 방문하는 모습.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연설에서
위안부 관련 질문 받자
“가슴 아프다”…사죄 언급은 없어
보스턴에 간 이용수 할머니
“아베, 역사의 산증인 있는데도 거짓말
공식 사과하고 법적 배상해야”
위안부 관련 질문 받자
“가슴 아프다”…사죄 언급은 없어
보스턴에 간 이용수 할머니
“아베, 역사의 산증인 있는데도 거짓말
공식 사과하고 법적 배상해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7일(현지시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인신매매에 희생된 분들”이라고 지칭하며, 이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방미 이틀째인 이날 아베 총리는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 연설에서 한 학생의 관련 질문에 “인신매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겪은 이들을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며 “나의 감정은 과거 정부 총리들과 다르지 않다”고 밝혔다.
이는 아베 총리가 지난달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밝힌 입장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당시 위안부 피해자들을 ‘인신매매 희생자’로 표현한 것은 사실상 이들에 대한 강제적 모집과 관리에 일본 제국주의 군대와 정부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받아들여져 한국의 반발을 샀다. 아베 총리는 이런 반발을 무시한 채 이번 방미 기간중 기존 태도를 계속 반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총리는 이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의 뜻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또 이 문제와 관련해 “일본은 현실적인 고통 경감 방안을 제공하는 여러 노력을 기울여왔다”고 밝혀, 추가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아베 총리는 또 20세기 역사에서 벌어진 각종 무력충돌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상처받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21세기에는 이런 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무력충돌시 여성 성폭력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지난해 1200만달러, 올해는 2200만달러를 유엔에 기부했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또 아시아 긴장 완화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2차 세계대전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한다”고 밝힌 뒤, 특정 국가가 기존 질서를 강압과 위협으로 변경하려는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특정 국가는 중국을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국제법 준수와 강압적 수단 사용 금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3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중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아베 총리는 26일 오후 보스턴에 도착해 7박8일간의 미국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미국 동부해안 지역의 보스턴을 시작으로 워싱턴을 거쳐 서부해안인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하는 아베 총리의 여정에는 미국 전역에 자신과 일본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아베 총리를 일본 같은 입헌군주제 국가 행정부 수반의 방문으로는 가장 격이 높은 ‘공식 방문’(official visit)으로 맞는다. 이런 예우는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이후 9년 만이다.
미국 쪽은 이날 미국 최고 명문가 출신인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로 하여금 아베 총리를 안내하도록 했으며, 저녁에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사저로 그를 초대해 만찬을 함께 하는 등 극진한 대접을 했다.
아베 총리의 전용기가 도착한 보스턴 로건공항에는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 가족과 마티 월시 보스턴 시장 등이 나와 그를 영접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부인 아키에와 함께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을 방문했다. 그는 도서관에서 케네디 전 대통령의 취임연설과 독일 베를린 장벽에서의 연설 등이 담긴 동영상을 시청했으며,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전시실에도 관심을 보였다고 <보스턴 글로브>는 전했다. 아베 총리는 도서관 관람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케네디 대통령의 놀라운 리더십 덕분에 많은 성취들이 이뤄진 점을 배웠다. 다시 한번 그의 리더십에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케리 국무장관의 사저에서 만찬을 했다. 이 만찬에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도 동석했다. 케리 장관이 아베 총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것은 양국 관계의 친밀도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27일 아침에는 보스턴 마라톤 테러 현장을 방문해 헌화한 뒤,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에 워싱턴으로 이동해 28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보스턴까지 건너가 “미국을 방문하기 전에 ‘역사의 산증인’인 나부터 보라”며 아베 총리를 비판했다. 이 할머니는 이날 성 앙투안 다블뤼 보스턴 한인성당과 보스턴 세계선교회를 찾아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던 위안부의 참상을 증언했다. 이 할머니는 “이렇게 역사의 산증인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도 아베는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아베는 바른 말로 그리고 양심적으로, 또 법적으로 공식 사과를 하고 내 인생에 대해서도 법적 배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정신대문제대책위원회 이정실 회장은 “아베 총리가 정말로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워싱턴 정대위는 28~29일 아베 총리의 상·하원 합동연설이 열리는 미 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항의집회를 열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아베 총리의 공식 사죄를 요구할 계획이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