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나가사키의 피폭자들이 안보법제에 반대 뜻을 밝혔습니다. 이는 법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인가요?”(렌호 민주당 의원)
“안보법제는 국민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아베 신조 일본 총리)
10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질문자로 나선 민주당의 렌호 의원이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해 꺼내든 화제는 단연 전날 나가사키 시장과 피폭자 대표가 내놓은 평화와 전쟁 반대의 메시지였다.
9일 원폭 70주년을 맞은 나가사키 시가 발표한 평화선언의 울림이 일본 사회에 확산되고 있다. 다우에 도미히사 나가사키 시장은 이날 기념식에서 “국가안보의 존재 양식을 정하는 법안에 대한 심의가 현재 이뤄지고 있다. 70년 전 마음에 새긴 맹세가, 일본 헌법의 평화이념이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불안과 우려가 퍼지고 있다. 이런 불안과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진지한 심의를 해주길 요청한다”는 내용의 평화선언을 발표했다.
이어 연단에 선 다니구치 스미테루(86) 나가사키 원폭 피해자협의회장은 “현 정권이 추진하는 안보법안은 피폭자 등 평화를 염원하는 많은 이들이 쌓아 올린 비핵화에 대한 마음을 근본부터 뒤집으려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참석한 기념식에서 아베 정권이 추진 중인 안보법제를 정면에서 부정한 것이다.
일본 시민들은 나가사키 평화선언 관련 내용을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부지런히 퍼나르며 “동의한다”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한 시민은 평화선언의 메시지가 “나가사키에서 전 일본에 울려 펴졌다. 교토에도 울려 퍼졌다”고 적었고, 기라 요시코 참의원(일본 공산당)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선언이 발표될 때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을 티브이를 통해서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는 감상을 밝혔다. 일본 주요 언론들도 “나가사키 시가 평화선언에서 안보법안에 대한 신중한 심의를 요청했다”는 내용을 앞다퉈 보도했다.
나가사키 시가 정부의 주요 정책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평화선언을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할 수 있는 ‘평화선언문 기초위원회’ 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견줘 시장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은 뒤 개인 담화 형태로 발표한 히로시마 평화선언엔 “일본 헌법의 평화주의가 보여주는 평화의 이치를 세계에 넓혀가야 한다”는 정도의 간접적 언급이 포함되는 데 그쳤다.
재일조선인들의 피폭 문제를 오랫동안 조사해 온 나가사키 ‘오카 마사하루 기념관’의 다카자네 야스노리 이사장은 10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나가사키에는 시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마련돼 있어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이런 내용을 평화선언에 넣을 수 있었다”면서도, “나가사키 현의회는 전국 최초로 아베 총리의 안보법제에 찬성한다는 결의를 채택한 지역이라 평화선언을 보는 현지 반응은 매우 복합적”이라고 전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