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담화 발표 막전막후
14일 공개된 아베 담화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진 연립 여당 내부 강경-온건파 사이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있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애초 이번 담화를 각의 결정(한국의 국무회의 의결)하지 않고 패전 70년을 맞아 자신의 역사인식 등을 담은 개인 담화로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뼈대로 한 안보 법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저항으로 지지율이 급락하자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지지를 얻어 담화를 내놓기로 방침을 바꾼다.
일본에서 각의 결정이 이뤄지려면 내각에 포함된 전 각료의 만장일치 동의가 필요하다. 그 때문에 20년 전인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지난달 8일 <한겨레>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당시 연립 내각을 구성하고 있던 자민당 출신 각료의 반대로) 각의 결정이 되지 않는다면 총리를 사임하겠다고 각오했었다”는 결심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와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 등을 포함한 양당 주요 당직자들의 회의가 열린 것은 지난 7일 밤이었다. 이날 아침에는 일본 ‘보수의 대부’라 부를 수 있는 나카소네 야스히로(97) 전 총리가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의 주요 보수 매체에 장문의 기고와 인터뷰를 통해 “(일본은) 중·한 양국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역사 문제의 알력에는 신중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 과거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함께 언동을 엄히 삼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밤 자민당이 공개한 담화의 초안엔 한국과 중국이 강력하게 주장해온 ‘식민지배와 침략’이 명확히 자리매김 되어 있지 않았고, ‘사죄’에 해당되는 내용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때문에 야마구치 대표 등 공명당 쪽은 “과거의 담화를 답습한다고 총리는 말하고 있지만, ‘사죄’의 의미가 세계 각국에 전해지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대해 아베 총리는 일단 “알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시점에서 담화의 방향이 어느 정도 굳어진 셈이다.
물론, 이런 흐름에 불만을 가진 세력도 있었다. 아베 총리보다 더 역사수정주의에 기울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이나다 도모미 자민당 정조회장은 11일 <후지 텔레비전> 계열의 한 방송에 출연해 일본이 “미래에도 영원토록 사죄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담화에 사죄의 표현을 넣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아베 총리가 자신의 지지 기반인 보수층의 의견을 더 분명히 담화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14일 공개된 아베 담화는 정권을 둘러싼 강온파의 갈등 속에서 탄생한 어정쩡한 타협물인 셈이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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