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케이신문’의 노구치 히로유키 정치부 전문위원의 온라인 칼럼.
안녕하십니까. 도쿄의 길윤형 특파원입니다. 이번에 나눠 볼 얘기는 이번주 있었던 <산케이신문>의 혐한 칼럼 해프닝의 전말입니다.
최근 한-일 사이에는 <산케이신문>의 노구치 히로유키(57) 정치부 전문위원이 지난달 30일 온라인에 게재한 한 칼럼을 둘러싼 심각한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노구치 전문위원은 <산케이신문>의 ‘노구치의 군사정세’라는 인터넷용 개인 연재 칼럼에서 현재 미-중 사이에서 여러 어려운 외교적 선택을 해야 하는 한국 외교를 구한말에 국가 존립을 위해 청나라·일본·러시아의 힘에 차례로 의지해야 했던 명성황후(기사에선 민비라는 표현을 사용)와 비교를 한 것입니다.
노구치는 ‘미중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씨 조선은 내외정세가 변화할 때마다 사대의 대상을 이쪽저쪽으로 바꿔왔다. 그 디엔에이(DNA)의 색을 진하게 계승하고 있는 한국은 이씨 조선에서 물려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훌륭한 ‘사대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이씨 조선엔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여성 권력자가 있었다. 민비파는 1895년 러시아의 지원으로 권력을 탈환했지만 3개월 뒤 민비는 암살당한다”며 박 대통령과 명성황후를 직접 비교하고 있습니다 ‘민비’나 ‘이씨 조선’ 같은 표현뿐 아니라 전체적인 칼럼의 논조에서 노구치가 한국에 대해 갖는 멸시의식을 느낄 수 있고, 명성황후의 암살 주체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균형감각도 갖추지 못한 저급한 글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언급해 한국 정부로부터 부당한 박해를 당하고 있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칼럼도 이번 칼럼처럼 지면용이 아닌 인터넷용이었습니다.
일본의 여러 기자들에게 노구치가 일본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갖고 있느냐 물었습니다. 답변들을 모아 보면 “5년 전까진 지면에 기명칼럼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역이라고 할 순 없는 분이다” “군사분야가 전문으로 한반도 상황에 대해선 잘 모른다” “이번 칼럼은 한국이 무시했어야 한다” 등이었습니다. <산케이신문>의 논조를 좋아하는 일부 보수·우익을 제외하고 일본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큰 영향력이 있는 인물은 아니란 의미입니다.
좀 다른 각도의 의견도 있었습니다. 철저한 콘텐츠 유료화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 신문사들은 자사가 공들여 생산한 기사를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공개하지 않습니다. 유일한 예외는 <산케이신문>입니다. 그 때문에 한 기자는 “산케이 기사는 무료로 전문이 인터넷에 공개되기 때문에 전파성이 있다. 특히 산케이의 논조를 좋아하는 우익들에게 균형감각을 잃은 노구치의 칼럼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문득 생각난 것은 한국과 <산케이신문>의 흥미로운 과거사입니다. 한국에서 40년 넘게 특파원 생활을 한 구로다 가쓰히로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2013년 5월 <한국 반일감정의 정체>라는 책을 냅니다. 특파원에 부임하기 전에 그와 저녁을 먹으며 이 책을 선물로 받았는데, 책 안에는 역대 한국 정부들이 <산케이신문>에 보여온 태도가 묘사돼 있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대엔 북한에 엄격하고, 한국의 경제발전과 근대화를 높이 평가하는 산케이가 양심적이라고 칭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사히=양심언론, 산케이=혐한언론’이라는 도식에 익숙해져 있는 한국인들이 들으면 눈이 휘둥그레질 내용이지만, 당시 군사정권의 시각에서 볼 때 ‘반공’이라는 이념을 공유하며 당시 한국 사회의 여러 인권 논란을 눈감아준 <산케이신문>은 분명 고마운 언론이었을 것입니다.
<산케이신문> 내부 관계자에게 물으니 “노구치 전문위원은 군사분야가 전문으로 한반도에 대해선 잘 모른다. 칼럼은 회사가 아닌 개인 의견이다. 사내에서도 한국의 ‘우려 표명’에 대해 특별한 반발은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산케이신문> 내부에서도 이번 칼럼은 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쪽으로 의견이 정리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2일치에 주일 한국대사관 관계자가 신문사를 항의 방문했다는 사실을 2면에 비중 있게 보도하면서 별다른 딴지를 걸진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일면식도 없는 언론계 선배께 송구하지만, 노구치 전문위원께는 쓰노다 후사코(1914~2010) 작가의 역작인 <민비암살>(한국판 제목 <명성황후, 최후의 새벽>)을 일독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는 책에 미우라 고로(1847~1926) 일본공사의 지휘 아래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인들이 주검에 어떤 짓을 했는지를 기술한 스에마쓰 겐초(1855~1920) 법제국 장관의 보고서 일부를 인용하고 있는데 “참으로 붓으로 옮기기가 참을 수 없지만…”이라고 단서를 붙이며 당시 이뤄진 행위를 구체적으로 옮기고 있다고 합니다. 쓰노다는 이후 내용을 굳이 인용하지 않았는데, 저도 마음이 너무 아파 찾아보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길윤형 도쿄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