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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오코노기 교수 “한국 외교, 미-중 사이에서 시행착오”

등록 2015-10-29 15:47

한-일 간에 이뤄진 지난 4년간 갈등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일본 내 한국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오코노기 마사오(70·사진) 게이오대학 명예교수는 최근 한-일 갈등의 본질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간의 외교적 대립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추구하는 과정에 이뤄진 일종의 ‘시행착오’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이번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결론이 나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아베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는 등 의사표현은 할 것”이라며 “아베 총리가 사죄 표현을 말한다면 베스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양국 관계에 대해 “예전의 낡은 관계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대 변화에 맞춰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일-한이 협력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양국이 언젠간 인식하게 될 것이라 본다. 이번 정상회담이 그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는 기대감을 밝혔다.

-지난 4년 동안 이어진 한-일 갈등을 되돌아보자. 지난 갈등의 본질은 무엇이었나?

“두개의 측면이 있다. 하나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 관계의 악화, 또 하나는 한국이 최근 추구한 일·미·중 사이의 대국외교, 즉 균형 외교라는 측면이 있다.

아직 한국 외교는 시행착오 중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의 상대적인 쇠락과 중국의 부상이라는) 시스템(체제) 변동이 있었다.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까라는 문제에서 일본(미-일동맹 강화)과 한국(대중국 접근을 통한 균형외교)이 다른 방향으로 대응했다. 그래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은 중국과의 외교가 미개척 상태였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거기에 손을 대 새로운 가능성을 좇았다고 생각한다.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 경제적인 이익을 추구하겠다는 것뿐 아니라 북한을 움직이려 했다. 때마침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 등이 겹치며 북한 붕괴론이 대두됐다. 이 과정에서 (약한 고리인) 일-한관계가 희생됐다고 본다. 그러나 중국을 통한 북한 변화론은 별 재미를 못 봤고, 아베 정권은 매우 터프했다. 일본에서 한국 피로가 생기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제 정신을 차리고 나니 일본과의 관계를 방치하는 것은 한국에게 이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적잖은 정치적 리스크를 지고 이번 정상회담에 나섰다. 왜 그랬을까.

“최근 가장 중요했던 것은 8월14일 아베 담화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이다. 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비록 어려움이 많이 남아 있으나 이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때”라며) 이를 받아들였다. 여기서 나온 인식은 역시 ‘투 트랙’이었다. 역사 문제는 원칙에 입각해 대처하고 다른 문제는 호혜적인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교류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정상회담을 한다는 것은 투 트랙을 철저히 하겠다는 결정이 된다.

박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결심한 것은 아베 담화에 만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 내부적으로는 9월3일 베이징 천안문에서 진행된 중국의 열병식 참가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아베 담화에 문제제기를 하고 베이징에 가면 한국이 균형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베이징에 간다는 결정이 먼저 내려진 이상 아베 담화에 대해선 억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를 ‘대국간 동태적 균형외교’라고 부른다. 그리고 유엔(UN)도 가고, 16일(현지시각)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회담도 했다. 이런 전체 모습을 보면, 이번 일·중·한 3개국 정상회담은 이런 전체 흐름의 매듭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3개국 정상회담이지만, 사실상 일본,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림자로 미국과도 관계가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동태적 균형외교란 무슨 의미인가?

“한국 정부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대중국 경사론’이다. 한국 외교부가 제일 신경 쓰는 것은 ‘미-중 가운데 어느 편이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균형외교라는 것의 속내를 보면 역시 미-중 사이의 균형이라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다고 하면 ‘한국은 어느 동맹이냐’며 미국이 화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일본이 들어가면 한국은 실제론 미-중이면서 일·미·중에 대한 균형을 취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이 (한국의 미-중 균형외교의) 매개체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이 미·중·일에서 균형을 취해 일본과 함께 하면 실제로는 미국 쪽으로 기우는 게 된다. 그래서 일-한관계에 협력의 여지가 생기고 이게 (한국 외교의) 조화로운 균형의 열쇠가 된다. 그와 함께 한국의 대중국 경사라는 미국의 비판이 사라지게 된다. 결국 이것이 일-한 관계를 개선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지난 대중 외교는 성과를 거뒀다고 보나.

“중국에 과도하게 기대했다. 한국이 중국에 접근한 것은 경제적인 의미 뿐만이 아니라 북한을 컨트롤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대가 어긋났다. 중-한관계 개선의 정점은 지난 9월3일 천안문 열병식이었다. 앞으로는 중-조관계가 개선돼 갈 것이다. (지난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 70돌 기념일을 맞아) 류윈산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북한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의 친서를 전달했다. 이는 김정은 제1비서를 중국에 초대했다는 의미다. 중국 학자와 만나 얘기해 보면 중국의 목적을 간단히 알 수 있다. ‘지금까지는 한국, 앞으로는 북한과 관계를 개선해 남북간 균형을 찾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남북 양쪽에서 영향력을 가지려 하기 때문에 한국에 일방적으로 가담하거나 기우는 일은 없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올까?

“(위안부 문제 등) 양자 외교에선 당장 결론이 나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예상되는 가장 큰 성과는 정상회담을 계속한다는 결정일 것이다. 또 위안부에 대해 어디까지 들어갈지 모르지만 계속 논의하자는 얘기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아베 총리도 박근혜 대통령도 이 문제가 ‘전시하 여성의 성폭력’이란 문제라는 점에선 일치하고 있다. 이게 대화의 실마리는 될 것이다. 아베 총리가 사죄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거나 어떤 의사표명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무엇을 할지가 문제이겠지만, 이번엔 아마 거기까지라고 생각한다. 역대 일본 총리들이 할머니들에게 사죄의 편지를 썼으니까 아베 총리가 이번에 사죄의 말을 해도 이상한 게 아니다. 거기까지 한다면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사죄 이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선 대립이 있을 것이다.

위안부에 대해선 일-한간의 역사적인 기억이 달라 대립하고 있다. 한국이 여러 면에서 일본을 비판하지만, 일본 입장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강제연행’(일본 정부가 직접 행정력을 동원해 여성들을 강제적으로 위안부로 동원했다는 의미)과 관련된 부분이다. 그 외의 부분에서 일본이 여성들을 전시동원 됐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말 미국 방문에서 인신매매라는 점은 인정했지만, 전시동원이란 부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업자들이) 인신매매를 해 일본군 기지 옆에서 영업한 게 아니라 (군이) 그들을 데리고 전쟁터에 동행을 시켰다. 이는 (일본 정부에게 책임이 있는) 전시 동원이다. 그런 측면을 아베 총리는 잘 인식하고 있지 않고, 박 대통령은 위안부에 대한 강제동원이 이뤄졌다고 믿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억의 차이가 있어 한번의 회담으론 메우기 힘들다.”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 양국간 군사협력이 심화될 것이란 지적이 있는데.

“이번 안보법제 개정을 통해 일본이 하려는 것은 매우 한정적인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다. 이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 나카타니 겐 방위상이 20일 일-한 국방장관 회담에서 여러가지 발언(“한국의 주권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다”)을 했다. 일본의 군사 당국은 (북한 지역에 대한 군사 활동을 할 때 일본이 한국의 동의를 얻으면) ‘북한으로부터 무슨 일이 생길 때 일본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를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면 안 된다. 결국 한국이 일본에게 하지 말라고 하면 한국이 대신 해주겠는가 하는 문제다.”

-아베 정권 이후 지난 3년을 평가하면?

“아베 총리는 역사에 너무 집착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안보법제를 통과시키면서 70주년 담화까지 동시에 하는 것은 무리다. 너무 욕심이 많았다. 안보법제에 대해선 이 시점에서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다시 한번 분명히 확인하는 것은 합리적인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70주년 담화는 꼭 지금 낼 이유가 없었다. 이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여러 비판에 못 이겨) 수정을 거듭해 결국 뭔 얘긴지 알 수 없는 담화가 나왔다.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앞으로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될까?

“예전에도 일-한 관계가 험악한 적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엔 역시 정상 간의 관계가 나빴다. 그 대립이 관료 기구를 구속했고 언론의 내셔널리즘을 부추겼다. 그동안 국제 시스템이 변했다. 중국의 대국화와 해양 진출이 이뤄지고 있고, 한국도 미들 파워로 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으며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저하됐다. 이런 변화 속에서 (일-한 간) 관계 조정이 어려웠을 것이다.

하층의 관계는 결코 나쁘지 않다. 상층부의 관계가 개선되면 민간 교류 등이 다시 활발해질 것이라고 본다. 상대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 교류 과정에서 한국인의 문화가 뭐고, 한국인이 뭘 생각하는지 역사를 포함해 학습해야 한다. 한국도 일본의 문화나 개성을 알아야 한다. 관계 개선의 특효약은 없다. 그러나 나는 양국 관계가 회복의 시기로 들어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비관적이지 않다.

일-한이 예전의 낡은 관계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1998년에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한-일 파트너십 선언’ 등 좋은 얘길 했지만, 그때와 상황이 변했다. 그래서 시스템 변동에 맞춰 일-한의 정부와 국민이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미국과 중국에 의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중의 경쟁이라는 것도 결국 협력자와 동맹을 획득하는 싸움이다. 일-한의 역할은 거기에 있다. 우리가 협력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공헌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일-한의 공동 이니셔티브나 리더십에 대해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양국 모두 시행착오 끝에 언젠간 이를 인식할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손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깨닫는다면, 이번 정상회담이 그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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