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일본 도쿄 다치카와시에서 열린 ‘삶뜻소리 재팬투어 2016’의 첫 공연에 앞서 삶뜻소리 멤버들과 환영합창단에 참여한 일본 시민들이 활짝 웃으며 사진 촬영에 임했다.
한국 프로젝트그룹 ‘2016 삶뜻소리 재팬투어’ 첫 공연 성황
“지난 몇 년간 일본에서 ‘헤이트스피치’(재일조선인 등을 향한 인종차별 집회)나 조선학교에 대한 탄압 등이 이뤄졌습니다. 노래를 통한 한일 시민 교류를 통해 이런 흐름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지난 2일 일본 도쿄 서부의 중심지인 다치카와시의 다마사회교육회관 홀. 750명이 넘는 관객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룬 ‘삶뜻소리 재팬투어 2016’의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고바야시 히카루(75)씨의 얼굴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이날 공연은 최근 일본 사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특이한’ 콘서트였다. 서울 광화문 앞 촛불집회 등에서 자주 불리는 노래 ‘나란히 가지 않아도’로 유명한 가수 손병휘(50)씨 등 한국 민중가수 5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삶뜻소리’ 단원들과 일본의 평범한 시민, 조선학교 학생들이 함께 무대에 올라 한일 양국 시민과 재일조선인들 사이의 우정과 연대의 소중함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 장애인들과 이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 고게라합창단 등 113명으로 구성된 ‘환영합창단’은 한국 민요 ‘아리랑’과 일본 동요 ‘아카톰보’(고추잠자리)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삶뜻소리는 이날을 시작으로 가나가와(5일), 나고야(8일), 히로시마(10일), 오사카(12일), 사이타마(15일), 도쿄(19일) 등 일본 11개 도시를 돌며 모두 13차례 공연을 펼친다.
삶뜻소리의 이번 공연이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노래를 통해 오랫동안 교류해온 한일 시민들의 신뢰의 역사 덕분이다. 이번 공연을 처음 생각해낸 것은 반평생 넘게 일본의 시민노래모임 ‘우타고에’(노랫소리) 활동을 해온 고바야시를 비롯한 미치다 다카시, 오자와 히사시 등 노장 회원들이다. 우타고에는 노래를 통해 일본 전후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자는 취지에서 1948년 2월 처음 시작됐다. 우타고에는 이후 노동운동과 50년대 반핵운동, 60년대 안보투쟁, 70년대 오키나와 반환운동 등 평화운동과 연대해가며 전국으로 확산돼왔다.
이들이 한국의 민중가요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8년이다. 우타고에 창립 50돌을 맞아 전국협의회 차원에서 국제교류 사업을 추진하던 고바야시 등은 한국의 민족음악인협회를 직접 찾아갔다. 이번 공연의 홍보 업무를 맡은 오자와는 “그때 한국에서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 혼이 담긴 노래를 듣고 받은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마침내 그해 11월 손씨와 김원중씨 등 한국 음악인 13명이 삶뜻소리를 구성해 도쿄국제포럼 무대에 섰다. 손씨는 “그때 우린 객석 반응이 썰렁해 걱정했는데, 일본 쪽에선 ‘정말 관객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흥분해 웃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그 뒤 10여년간 삶뜻소리는 해마다 일본 공연을 하며 교류를 이어왔다.
최근 수년간 중단됐던 교류는 2014년 11월 고바야시 등의 제안으로 이번에 다시 성사됐다. 아베 정권 등장 이래 한일관계가 위험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판단한 이들은 노래를 통해 한일 시민연대를 다시 회복하고자 했다. 고바야시는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순 없지만, 사람의 마음을 전할 순 있다”며 “53년 동안 이어온 우타고에 인생을 걸고”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합류한 한국 음악인은 모두 5명이다. 이날 무대에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출신 가수 문진오씨는 동학농민들의 한이 담긴 ‘이 산하에’를 열창했고, 노찾사 출신 김은희씨, 극단 금강 출신 김영씨, 노래패 우리나라의 이혜진씨 등이 조선학교를 응원하는 노래 ‘우리 학교는 우리 고향이다’ 등을 불렀다. 니시도쿄조선제1초중급학교 학생 8명도 가야금, 장새납, 소해금 등 우리 전통악기들을 연주해 큰 박수를 받았다.
앙코르 무대에 오른 삶뜻소리의 마지막 노래는 ‘나란히 가지 않아도’였다. 이 노래의 한국말 가사는 “나란히, 나란히 가지 않아도, 함께 가는 거지요”지만 일본어 가사는 “나란히 걷지 않아도, 반드시, 반드시 (당신은 어딘가에서 함께하고) 있지요”로 바뀌어 있었다.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오른 일본의 한 참가자는 잘 되지 않는 발음을 억지로 짜내가며 “오늘 정말 너무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지난 2일 일본 도쿄 다치카와시에서 열린 ‘삶뜻소리 재팬투어 2016’의 첫 공연을 앞두고 우타고에 원로 회원 고바야시 히카루(맨 왼쪽)와 가수 손병휘(맨 오른쪽)씨 등이 함께 연습하고 있다. 사진 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