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함 야마토
1945년 연합군 전투기 300여대 집중 공격에 침몰
승무원 1023명 숨져…일본인에겐 군국주의 상징
승무원 1023명 숨져…일본인에겐 군국주의 상징
시대에 뒤떨어진 ‘거함거포주의’의 상징이었던 전함 야마토에 대한 정밀조사가 실시된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8일 야마토가 제조된 일본 해군기지(현 해상자위대 기지)가 입지해 해 있는 히로시마현 구레시가 10일부터 2주에 걸쳐 가고시마현 마쿠라자키시 남서쪽 200km 해안에 침몰해 있는 야마토에 대한 잠수 조사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행정기관이 옛 일본 해군과 영욕을 함께 했던 야마토에 대한 조사에 나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인들에게 전함 야마토는 ‘특공’(자살공격)과 함께 옛 군국주의 시절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상징물로 자리매김 돼 있다. 야마토는 길이 263m, 만재 기준 배수량이 7만2809t나 되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함선으로 1941년 12월 구레시의 옛 해군기지에서 완성됐다.
이 함선은 태평양전쟁 이전 세계 해군의 오랜 상식이었던 거함거포주의의 철학이 철저히 구현된 함선이었다. 거함거포주의란 해전에서 이기려면 커다란 배에서 커다란 함포를 달아 적 해군을 분쇄해야 개념을 말한다. 이 철학은 야마토에 장착된 38km 사정거리의 구경 46cm 짜리 주포 9문에 의해 구현된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 거함거포주의는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한 실패의 기억으로 각인돼 있다. 세계 해전은 이미 전함의 함포 공격에 의존한 공방에서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공중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1945년 4월1일 미군이 오카나와 본토에 상륙해 오카나와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상황에서 일본 해군에게 남은 것은 야마토 밖에 없었다. 야마토의 쌍둥이 전함으로 야마토급 2번 전함인 무사시는 1944년 10월24일 미국이 필리핀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레이테 해전에서 이미 침몰한 뒤였다.
일본 해군은 야마토를 이용해 패전의 기미가 짙어지고 있는 오키나와 전쟁의 역전을 노린다. 이는 1945년 4월6일부터 11일가지 진행된 오키나와 1차 총공격으로 구체화됐다. 이 작전의 개요는 공중에서 특공기들이 연합군 함선을 공격하는 사이 바다에선 야마토가 연합군 함대에게 함포 공격을 가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중에서는 특공, 해상에선 야마토의 주포가 불을 뿜는 사이 오키나와 방어군인 제32군이 공세로 전환한다면 일본에게도 실낱 같은 역전의 기회가 있을 듯이 보였다. 그러나 야마토는 항구를 나선 직후인 4월7일 규슈 서남 해안에서 연합군 전투기 300여대의 집중 공격을 받고 허무하게 침몰했다.
이후 야마토에 대한 잠수 조사가 이뤄진 것은 침몰 이후 40년이 지난 1985년이었다. 그러나 이 조사는 민간 잠수사들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행정기관에 의한 본격적인 정밀 조사는 아니었다.
<아사히신문>은 구레시가 이번 조사를 위해 무인 잠수 탐사기를 투입해 하이비전 카메라로 화면을 찍고 레이저 등을 이용해 침몰한 함선의 두께와 크기 등을 계측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번 조사의 성과는 올 가을부터 구레시에 위치한 ‘야마토뮤지엄’을 통해 공개된다. 이 박물관의 도가타 가즈시게 관장은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야마토가) 어떻게 파괴되어 가라앉았는지 불명확한 부분이 많다. (이번 조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야마토의 쌍둥이 전함인 무사시는 지난해 3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동 창업자인 폴 앨런이 필리핀 레이테 섬 주변 해역에서 진행한 심해 조사에서 소재가 확인된 바 있다. 앨런은 당시 자신의 트위터(twitter.com/paulgallen)를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함인 무사시를 해저 1000m에서 찾았다. 곧 비디오 자료도 올릴 것이다. 당시 숨진 1023명의 승무원들의 명복을 빈다”는 사실을 전했다.
일본인들에게 전함 야마토는 과거 군국주의에 대한 일종의 향수로 인식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1974년 요미우리 TV를 통해 <우주전함 야마토>라는 SF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만들어져 이후 3탄까지 이어지고, 극장판 애니메이션과 소설 등도 나왔다. 태평양 전쟁에서 격침된 일본군 전함 야마토(大和)가 미래에 부활해 외계인의 침략을 물리친다는 이야기로, 일본 군국주의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과 미국에서도 각각 <우주전함 V호>(1981), <스타 블레이저스>(Star Blazers)라는 이름으로 방영된 바 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참조: 길윤형, <나는 조선인 가미가제다>(2012년,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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