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37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서 평화의 소녀상 뒤로 구호가 쓰인 현수막이 붙어 있다. 서울/연합뉴스
“10억엔을 출연할 때 한국 쪽이 소녀상 문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일본 정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간 12·28 합의 이행을 둘러싸고 일본 정부가 소녀상 철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성의 표시’를 바라고 있다. 한국의 주요 관계자들이 7월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화해치유 재단’(가칭)을 설립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재단 설립이 임박해졌지만, 일본 정부는 한-일 정부 합의사항인 10억엔 출연 시점을 놓고 뚜렷한 답변을 내지 않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8일 10억엔의 출연 시기에 대한 질문을 받고도 “성의를 갖고 합의를 실행에 옮기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히는데 그쳤다.
그동안 합의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던 일본이 주춤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최대 관심사인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비(소녀상)가 이전될 조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은 최근 “소녀상 이전 문제가 아직 미해결”이라는 보도를 거듭 내보내며, 일본 정부의 대응을 주목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소녀상 이전은 한국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단 설립 준비위원회에 참여 중인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도 지난 8일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녀상 철거를 위해 (일본이) 10억엔을 냈다는 오해를 부르면 한국 국내적으로 매우 감정적인 문제가 된다. 그러니 한국 정부에게 맡겨 두는 게 가장 좋다. 일본의 생각은 잘 알고 있고, 한국 정부가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소녀상 철거 문제는 재단 설립 뒤로 미루자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29일 <요미우리신문>에는 일본 정부의 속내를 드러내는 묘한 주장이 실렸다. 일본은 “10억엔을 출연할 때 한국 쪽이 소녀상 철거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한국이 난색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신문은 그러면서 “자민당에선 소녀상의 철거를 10억엔 출연의 전제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뿌리 깊다”고 지적했다.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난 뒤 양국은 일본이 10억엔을 출연할 때 한국이 ‘소녀상 이전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다시 한번 확인할지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