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일본 평화헌법 수호를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이 ‘헌법 9조’를 지킬 것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일본 언론들이 2012년 자민당이 만든 “헌법 개정 초안을 베이스(기초)”로 앞으로 헌법 논의를 진행해 가겠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11일 기자회견 발언에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 보수 주류의 정서를 반영하는 <요미우리신문>은 12일 아베 총리의 발언을 살짝 비틀어 “(아베 총리 등 자민당이 2012년 4월 발표한) 초안을 기초로 구체적인 개정 항목의 논의를 시작한다는 방침이지만, 최종적으로는 여야의 합의 형성을 중시해 초안에 구애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실제 아베 총리의 발언은 “(자민당) 개정 초안을 실현하는 것은 당 총재로서의 책무”, “우리 당의 안을 베이스로 하면서 어떻게 3분의 2를 구축해 나갈 것인지가 정치의 기술”이라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초안을 기초로 헌법심사회를 통해 여야간 이견을 좁혀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지만, 요미우리신문이 독자들의 거부 반응이 최소화되도록 발언 맥락을 조금 손본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 헌법 초안에 대해 보수신문조차 조심스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일본 보수 진영으로부터도 적잖은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초안은 일본 평화헌법 핵심인 9조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현행 헌법의 기본적 인권 조항(97조)을 일방적으로 삭제하고,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강요하는 조항들이 포함돼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요미우리신문>은 “자민당 내에서 ‘(초안을 만들) 당시는 야당이어서, 지금 보면 좀 극단적으로 된 부분이 있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은 11일 사설을 통해 “야당이 ‘아베 총리에 의한 개헌’을 경계하는 근본에는 이 초안이 있다. 역으로 자민당이 초안을 최종 목표로 내거는 한 여야의 침착한 논의를 방해할 것”이라며 초안의 폐기를 공개 요구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들은 자민당 초안에 대해선 연립여당인 공명당이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어 아베 총리가 원하는 식의 개헌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을 쏟아냈다.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는 그동안 공명당이 원하는 것은 현행 헌법의 평화주의 이념을 더 강조하는 가헌(加憲)임을 밝혀왔다. 아베 총리가 말한대로 ‘정치의 기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편,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오는 8월3일께 참의원 선거 결과를 반영한 개각을 단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아베 정권을 지탱해 온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 등의 거취에 관심이 모아진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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