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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일왕 “살아 있는 동안 왕위 물려주겠다” 의향

등록 2016-07-13 21:24수정 2016-07-13 22:30

, 궁내청 관계자 등 주변에 퇴위 의사 전해
평생 일본 평화헌법의 소중함을 몸소 실천한 평화주의자
아키히토(오른쪽) 일왕이 지난 1월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나루히토 왕세자와 함께 걷고 있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아키히토 일왕이 13일 생전 퇴위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AP 연합뉴스
아키히토(오른쪽) 일왕이 지난 1월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나루히토 왕세자와 함께 걷고 있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아키히토 일왕이 13일 생전 퇴위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AP 연합뉴스

올해 82살이 되는 일왕이 수년 내에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13일 아키히토 일왕이 살아 있는 동안 왕위를 왕세자에게 물려주겠다는 뜻을 궁내청 관계자에게 전했다고 보도했다.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다른 언론들도 이날 밤 궁내청 관계자를 인용해 일왕이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생전 퇴위’ 의향을 밝혔으며 조만간 이 같은 뜻을 기자회견 등의 방식으로 공표하는 것도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방송들은 수많은 보도진들이 모여든 ‘황거’ 주변 상황을 생중계로 연결하며, 시민들의 다양한 반응을 전하는 등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왕은 평소 “헌법에 정해진 상징으로서의 업무를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일왕의 지위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왔으며, 감당해야 하는 공무를 줄이거나 대역을 세우면서까지 왕위에 머무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대략 5년 전부터 가져왔다고 <엔에이치케이>가 전했다. 일왕은 수년 내 왕위를 물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며, 이 같은 뜻을 왕비와 왕세자 등도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현재 ‘왕실전범’상 일왕의 왕위 양위는 인정되지 않아 실제 퇴위가 이뤄지려면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 일왕의 뜻대로 퇴위가 실제 이뤄지면 나루히토(56) 왕세자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쇼와 일왕의 장남으로 1933년 12월 태어난 아키히토 일왕은 11살에 일본의 패전을 겪은 뒤, 일본의 평화 헌법을 소중히 여기는 평화주의자로서 성장했다. 실제로 그는 1989년 즉위 기자회견에서 “헌법으로 정해진 일왕의 지위를 염두에 두고 일왕의 업무를 수행해 가겠다. 현대 시대에 적합한 왕실의 존재 방식을 추구해 가겠다”며 평화 헌법에 대한 깊은 애착과 그 안에서 일왕이 감당해야 하는 의무를 늘 고민해 왔다.

그런 일왕 나름의 결론은 즉위 10년째가 되는 1999년 기자회견에서 공개된다. 일왕은 이 자리에서 “장애자, 고령자, 재해를 입은 분들, 사회와 다른 이들을 위해 진력을 기울인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서는 게 내 소중한 임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왕은 일본에 큰 자연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이재민들 앞에 무릎을 꿇고 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으며, 이런 모습은 지난 4월 발생한 구마모토 지진 때도 이어졌다.

한국인들의 인상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일화는 애국심을 강요하는 일본 교육에 대한 일왕의 은근한 비판이었다. 그는 2004년 10월 일왕이 주재하는 원유회(가든 파티)에 참석한 일본장기 기사인 요네나가 구니오(사망)가 “일본의 학교에서 국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제창하도록 하는 게 제 일입니다”고 말하자 “역시 강제가 되는 것은 아닌 게 바람직하죠”라고 답했다.

그는 한반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의미 있는 발언을 남겼다. 일왕은 2001년 12월 68살 생일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나로서는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돼 있는 것에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 무령왕은 일본과 관계가 깊고 이때 5경박사가 대대로 일본에 초빙됐다. 무령왕의 아들 성명왕(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 지배를 염두에 둔 듯 "유감스럽게도 한국과의 교류는 이런 교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일왕은 아베 신조 총리에 대한 ‘보이지’ 않는 맹렬한 비판자의 면모를 자주 보여왔다. 일왕은 아베 총리가 개헌을 자신의 ‘필생의 과업’이라며 개헌에 대한 의욕을 거듭 밝히자, 2013년 12월 80살 생일 땐 “평화와 민주주의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소중한 것으로 생각해 일본국 헌법을 만들어 여러 개혁을 시행해 오늘에 이르렀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토를 재건하려고 여러 사람들이 쏟아 부은 노력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8월15일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선 “지난 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이후 전쟁의 참화가 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절실히 바라며, 전 국민과 함께 전진(戰陣)에 지고, 전화에 스러진 사람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추도의 뜻을 밝힌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지난 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의 뜻을 밝힌 일왕의 이 발언은 추모식 전날 공개된 아베 담화와 적잖은 대조를 보여 일본 안팎에서 큰 화제를 불러 모은 바 있다. 일왕은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난 태평양전쟁의 격전지를 돌며 전쟁에서 숨진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고된 행군을 이어왔다. 일왕의 이번 퇴위 발언이 평화헌법을 둘러싼 최근 일본 내의 미묘한 정세와 연관되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갑작스런 일왕의 퇴위 소식에 일본 시민들은 당혹스런 반응을 보였다. 일본 시민들은 <엔에이치케이>와 인터뷰에서 “너무 갑작스런 일이라 놀랍다” “너무 고령이시고 몸이 좋지 않으셔서 (퇴위 하시고) 편히 여생을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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