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미군 해병대 항공기지 정면의 모습. 성조기와 일장기가 나란히 게양돼 펄럭이고 있다.
“저기 있네요. 저 멀리 둥근 지붕 아래 까만 물체. 보이시나요?”
지난 21일 오전 10시, 미군 해병대 이와쿠니 항공기지의 활주로를 조망할 수 있는 제방 위에서 9선 시의원인 오니시 아키코(72) 의원이 기지 방향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미군이 쉬는 날입니다. 오늘 F-35B가 추가로 배치되진 않을 것 같아요. 18일 오후 처음 2기가 도착하던 날 모두 여기서 사진을 찍었죠.”
극동 최대의 군사기지로 변모하고 있는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 기지는 세토나이카이에 살을 맞댄 바닷가에 자리해 있었다. 이와쿠니 시내를 동으로 흐르는 이마즈강과 몬젠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삼각주에 자리한 기지엔 길이 2440m, 너비 60m의 광대한 활주로가 조성돼 있고, 한쪽 구석에 전투기를 한대씩 넣을 수 있는 둥그런 격납시설이 눈에 띄었다. 격납시설 아래 웅크리고 선 검은색 작은 물체. 미-일 동맹과 중국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미 해병대용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인 F-35B였다.
오니시 의원은 “외부에선 F-35B의 배치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지역민들 입장에서 정말 문제는 이제부터”라고 말했다. 2006년 5월 확정된 주일미군 재편계획에 따라 가나가와현 아쓰기 기지에 배치돼 있던 제5항모항공단(미 항모 로널드 레이건에 탑재되는 함재기 부대)이 올 11월부터 2018년 5월까지 3차례에 걸쳐 이곳으로 옮겨오기 때문이다. 현재 이와쿠니엔 FA-18 슈퍼호닛과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AV-8 해리어 등 공격용 전투기로 무장한 제12해병 항공군이 주둔해 있다. 제5항공단 전력이 가세하면 이와쿠니에 배치된 항공전력은 현재의 2배인 120~130기(가데나 기지는 100여대)로 늘어나게 된다. 오키나와현 가데나를 뛰어넘는 극동 최대의 군사기지로 변모하게 되는 셈이다. F-35B와 중국 쪽으로 전진 배치된 미 항모 전력이 이전보다 더 신속하게 한반도부터 남중국해에 이르는 동아시아의 여러 사태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21일 오전 10시 이와쿠니시 중심에 자리한 아타고산 신사 앞 공원에서 진행된 주민들의 미군기지 반대 집회에서 이와쿠니 시민 도무라 요시토가 자신이 이와쿠니 기지 주변에서 촬영한 다양한 종류의 미군 비행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역 주민들의 반응이었다. 만나는 이들에게 기지가 극동 최대의 군사기지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의견을 물었지만 “소데스네. 다이헨데스네”(그렇네요. 큰일이죠)라고 말할 뿐, 똑 부러진 반대 의견을 말하는 이들을 찾기 힘들었다. 지역 시민단체인 ‘아타고야마를 지키는 모임’의 오카무라 히로시(73) 대표는 “이곳 사람들은 메이지 유신 때부터 일본을 이끌어온 것은 자신들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8명의 총리대신을 배출한 지역이니 뭐든지 국가에 협력적이다”라고 말했다. 이 지역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작은외할아버지인 사토 에이사쿠의 지역구였고, 현역 의원은 아베 총리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 외무성 부대신이다.
그러나 주민들이 기지의 확대와 기능 강화를 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하라 가쓰스케 전 시장 시절인 2006년 3월 미군부대 이전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에서 90%가 “반대”를 선택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이하라 시장을 굴복시키기 위해 2006년 12월 애초 약속했던 청사 보조금 35억엔의 지급을 중단했다. 이하라 시장은 2008년 2월 재신임을 묻기 위해 사임 뒤 재선거에 나섰지만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시장으로 출마한 후쿠다 요시히코 현 시장에게 석패했다. 이후 주민들의 주택단지로 개발이 시작됐던 아타고산 주변 지역은 이전해 오는 미군 장교들을 위한 고급 주택지로 용도가 변경돼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와쿠니시는 현재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기지 재편 교부금에 들썩이고 있다. 마을엔 새로운 쓰레기소각장, 소방방재센터가 들어섰고, 주변 지역에 서식하는 천연기념물인 ‘시로헤비’(하얀뱀)를 위한 관광시설도 만들어졌다. 미군기지 반대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 마쓰다 가즈시(59)는 “미군 주둔으로 인한 피해가 급증할 것이다. 너무 늦었다고 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투쟁해야 한다. 한국 성주 주민들이 보여준 투쟁 의지를 일본인들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쿠니(야마구치현)/글·사진 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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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쿠니시를 포함하는 야마구치 2구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동생 기시 노부오의 지역구다. 시내 곳곳에서 “일본을 지키고 미래를 개척하자”는 기시 의원의 포스터를 볼 수 있다.
일본공산당의 오니시 아키코 의원이 이와쿠니 기지를 조망할 수 있는 제방 위에서 기지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활주로 옆의 원통형 격납시설 아래 F-35B가 자리하고 있다.
이와쿠니 시민 도무라 요시토가 18일 오후 촬영한 F-35B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