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인듯 휴가 아닌듯 일본 ‘워케이션’ 확대

JAL, 다음달부터 워케이션 집중 사용 권장
와카야마현 지방 기업들에 도입 권유

하와이 와키키키 해변. <위키피디아>

하와이 리조트에서 낮에는 회사 컴퓨터에 접속해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칵테일을 마시면서 쉰다.

일본을 대표하는 항공사인 일본항공(JAL)은 다음달 1일부터 직원들이 이런 식으로 휴가지에서 일을 하는 제도인 ‘워케이션’을 도입한다고 밝혔다고 <마이니치신문>이 22일 전했다. 워케이션은 워크(work)와 베케이션(vacation)의 합성어로, 정보통신(IT) 기업과 중소기업들 가운데 도입하는 곳이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이 워케이션 범위를 국외로까진 넓힌 일은 이례적이다.

일본항공은 이전에도 조종사와 승무원들에게 원격 근무인 ‘텔레워크’를 권장했으나, 텔레워크는 주로 명절 때 고향 집에서 많이 이용됐다. 휴가와 연동된 개념은 아니었다. 일본항공 홍보부는 “우리 회사는 세계 어디에서도 일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일을 하는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회사 회의 때문에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가지 못했던 직원도 워케이션을 이용하면 가족과 휴가지로 떠날 수 있다.

워케이션을 가게 되면 일단 근무 시간에는 회사에서 지급한 컴퓨터로 일을 한다. 회의가 열리면 전화기를 통해서 대응한다. 업무 시작과 종료 때 각각 상사에게 전화로 보고하는 식으로 근무 상황을 알린다. 정식 근무이기 때문에 워케이션 사용일은 휴가로 처리되지 않고 근무일처럼 급여도 나온다. 근무 시간이 아닌 이른 아침과 업무 종료 이후 시간을 휴가지에서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 근무와 다른 점이다. 정식 휴가에 이어서 워케이션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일본항공은 휴가철인 7~8월에 워케이션 사용을 집중 권장할 예정이다. 9월 이후에도 사용 가능하다.

일본항공 전에 워케이션을 도입한 대표적인 기업은 일본마이크로소프트였다. 지난해 5월부터 시행했는데, 직원들이 주로 사용한 날은 금요일이었다. 금요일에 일단 휴가지에 가서 일하고 토·일요일에는 휴일을 만끽하는 식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관광 활성화를 위해 워케이션 도입을 기업에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호텔이 많은 해변 지대인 난키시라하마를 끼고 있는 남부 와카야마현은 지난 4월부터 지역 중소기업들에게 워케이션 도입을 권유하고 있다. 지역 중소·벤처기업 17곳이 올 여름 난키시라하마 리조트에서 직원들이 워케이션을 즐기게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워케이션은 일본에 앞서 미국에서 유행한 제도다. 미국에서 워케이션이 확산됐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휴가가 유급이 아니라는 점이 원격통신의 발달과 맞물려 나타난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일본에서 워케이션 확산은 노동력 부족과 장시간 노동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최근 움직임과 연관된 측면이 더 강하다. 일본에서는 최근 몇년 동안 노동력 부족 상황 속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다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3월 ‘일하는 방식 개혁안’을 내놨다. 연간 시간외 노동을 720시간으로 제한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하는 내용으로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은 이런 분위기에 따라 근무 시간을 줄이고 근무 형태를 유연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다만 워케이션은 휴가인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한 제도로 진정한 휴식이 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