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트프뱅크사 인간형 로봇 ‘페퍼’
북 두드리고 현장 생중계도 가능
영적 세계 침범 회의적 시선도
유튜브 영상 갈무리
외로운 인간의 말동무가 돼주고, 허드렛일이나 힘들고 위험한 3D 업종을 대체해왔던 로봇이 이제 인간의 최후 영역 중 하나로 꼽혀온 영적 세계까지 침범할 조짐이 보인다.
<가디언>은 2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삶의 끝 산업 박람회’에서 소프트뱅크사의 로봇 ‘페퍼’가 장례를 주관하는 승려로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페퍼는 검은 승복을 입고 금빛 문양이 화려하게 박힌 낙자를 두른 채 제단 앞에서 북을 두드리고 경전을 읽었다. 예식 중 종교 음악을 반복적으로 연주하거나 조문객들과 대화할 수 있으며, 장착된 카메라를 이용해 장례식에 직접 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 현장을 생중계하는 것도 가능하다. 로봇 승려 사업을 시작한 업체 닛세이에코는 페퍼에 일본 불교 주요 종파 4곳의 경전 내용을 입력시켰다. 2015년 인간형 로봇으로는 최초로 일반에 시판된 페퍼는 120㎝ 초등학생 정도 키에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를 읽고 감정을 인식할 수 있다.
고령화가 심화된 일본에선 연간 130만명이 사망한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50%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장례 비용도 유난히 비싸다. 일본소비자협회 조사 결과, 2008년 기준 평균 장례 비용은 280만엔(약 2880만원)이다. 장지를 구하는 데는 이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인간 승려가 장례를 집전하면 평균 약 24만엔이 들지만, 로봇 승려의 대여 비용은 5만엔이다. <재팬 타임스>는 노년층 증가로 새로운 장례 서비스가 잇따라 출시되는 가운데, 가족을 떠나보내는 일조차 더 편리하고 저렴하게 하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로봇 승려가 인기를 끌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닛세이에코의 이나무라 미치오 고문은 “농촌 지역의 인구가 감소하면서 시주가 줄고, 종교와 전혀 상관없는 아르바이트를 해 겨우 먹고사는 승려가 늘었다”며 승려 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로봇이 이를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람회에 참석한 승려 마쓰오 데쓰기는 “종교의 중심은 마음에 있다고 믿는다”며 “기계가 마음을 전할 수 있는가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영혼이나 영적 행위를 이해하지 못하는 로봇이 종교 활동을 돕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가디언>은 페퍼가 아직 실제 장례식에 이용된 적은 없지만 로봇이 인간 삶 전반에 서서히 다가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현재 페퍼 약 1만대가 고객 안내 등 여러 분야에서 이용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2047년이면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