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 일왕이 태평양전쟁 패전일인 15일 도쿄 지요다구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 추도식에서 묵념을 하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을 하며,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 바란다.”
내년 4월 퇴위를 앞둔 아키히토 일왕이 일본의 패전일인 15일 일본과 아시아 주변국들에게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깊은 반성’과 미래 ‘평화’에 대한 마지막 메시지를 건넸다. 아키히토 일왕은 15일 도쿄 지요다구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해 “전후 오랫동안 지속된 평화의 세월을 생각하며, 과거를 돌이켜본다. 깊은 반성을 하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전쟁의 참화를 다시 반복해선 안 된다고 절실히 기원한다. 전국민과 함께 전쟁터에서 숨진 사람들에 대해서 마음으로부터 추도의 뜻을 밝히고, 세계 평화와 일본이 한층 더 번영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그가 8·15를 맞아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올해로 4년째에 이른다.
아키히토 일왕이 국가 공식 행사인 전국전몰자 추도식에서 “깊은 반성”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후 70년을 맞아 ‘아베 담화’를 발표한 직후인 2015년부터다. 당시 아베 총리는 이 행사가 열리기 하루 전인 14일 아베 담화를 발표해 일본이 저지른 지난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와 반성의 뜻을 분명히 한 1995년 ‘무라야마 담화’를 사실상 무력화 했다. 아베 총리는 말로는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담화에 “전쟁과 아무 관계 없는 우리 아이들과 손자 그리고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넣었다. 이번 담화를 끝으로 일본이 더 이상 주변국들에게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아키히토 일왕은 2016년 추도식부터는 “지난 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이라는 말 대신 “과거를 돌이키며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아베 총리는 6년 연속 일본의 가해 책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1993년 호소카와 모리히로 총리 이후 일본 총리들은 전국전몰자 추도식에서 “깊은 반성”과 “애도의 뜻” 등의 표현을 사용해 왔다. 아베 총리는 “오늘의 평화와 번영은 전몰자의 존귀한 희생 위에 구축된 것임을 우리는 한시라도 잊을 수 없다. 다시 한 번 경의와 감사의 뜻을 바친다. 전후 일본은 평화를 중시하는 국가로서의 길을 오직 걸어왔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전임 총리들이 사용해 왔던 “부전(不戰)의 맹세”라는 말도 사용하지 않은 채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는 에두른 표현을 사용했다.
도쿄/조기원 특파원
garden@hani.co.kr
<일왕 발언 전문>
오늘, ‘전몰자를 추도하고 평화를 기념하는 날’을 맞아 전국전몰자추도식에 참석하며, 지난 대전 때 둘도 없는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과 그 유족들을 생각하면서 깊은 슬픔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종전 이후 이미 73년이 흐르는 동안 국민들의 끊임 없는 노력에 의해 오늘날 일본이 평화와 번영을 구축해 왔습니다. 그러나 고난으로 가득했던 지난 날을 생각할 때면, 그 감개는 여전히 다할 줄을 모릅니다.
전후 긴 시간에 걸친 평화로운 세월을 생각하면서, 여기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깊은 반성을 하는 것과 동시에 전후 전쟁의 참화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절실히 기원하며, 전국민과 함께 전쟁터에서 숨지고, 전화에 쓰러진 이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추도의 뜻을 나타나며, 세계 평화와 일본의 더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화보] 제73주년 광복절